현재 이스라엘을 이루고 있는 국민은 대부분 남유다에 속하는 유다지파의 자손들이다. 이에 비해 북이스라엘을 이루었던 열 지파는 남유다보다 136년 앞선 BC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고, 그후 회복되지 못한 채 '잃어 버린 열 지파'가 되었다. 열왕기하 17장 18절은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그런데, 이 잃어 버린 열 지파 중에서 유독 단지파에 대해서는 이설들이 많다. 단군이 단지파의 후손이라느니, 단지파가 중국으로 진출하였다느니 하는 설들이 그것이다.

단지파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후 예루살렘 서쪽의 벧세메스 일대 쉐펠라(저지대)를 분배받았다. 동쪽으로는 벤냐민과 접하였고, 남쪽으로는 유대지파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그러나 단지파는 불행하게도 블레셋이라는 강력한 적을 남서쪽에 두고 있었다. 블레셋의 세력이 팽창할 때마다 단지파는 동쪽 산악지방으로 조금씩 밀려났고, 나중에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서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단지파는 이스라엘 최북단 상갈릴리지방으로 집단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던 라이스족은 졸지에 멸망하였다. 사사기 18장은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단의 무덤은 상갈릴리가 아니라 벧세메스 북쪽 44번 국도변에 있다. 에스다올에서 서북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 언덕받이에 있는데, 안내 간판이 잘 붙어 있다.
단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로서 라헬의 시녀 빌하가 낳았다(창30:6). 그는 가나안으로 이주하기 전 애굽에서 죽었으므로 벧세메스 부근에 있는 무덤도 기념무덤일 수밖에 없다.

단의 뜻은 '심판관'이며, 요한계시록에서 인맞은 자 십 사만 사천 명을 헤아리는 지파 명단에서 빠져 있다. 심판관이라는 뜻에서 보듯이, 단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고 주석을 다는 학자도 있다(계7:5-8).

그러면 단지파의 후손들이 한국으로 와서 고조선을 세웠을까? 아니면 중국으로 와서 정착을 하였을까?
이점에 대한 답변은 무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살펴본다면, 우선 단의 아버지 야곱이 BC 1836년경 출생하였으므로 단은 그 후에 태어났다. 그리고 단은 아버지 야곱을 따라 그의 외아들 후심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고(창46:23), 가나안에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 갔다.
단의 후손들은 가나안에서 예루살렘 서쪽의 땅을 분배받았고, 나중에 북쪽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단과 그의 후손들은 적어도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BC 722년 이전에 굳이 동방으로 이주할 이유가 없었다.

BC 722년 이후에는 단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 발표한 디아스포라 유대인 분포도를 보면 중국에도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 이미 오래 전에 단종된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단종이라는 것이 현지인과의 혼혈로 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나 마지막 남은 수십 명이 근래에 이스라엘로 모두 귀환하였다. 필자는 그들이 사용하던 나무상자 하나를 입수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그 상자에는 다윗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로 귀국하기를 희망하지만, 더러는 현지에서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귀국시키기도 한다. 우선 이스라엘 내에서 아랍인보다 유대인 숫자가 많아야 땅따먹기에 유리한 이유도 있지만, 안전상의 이유도 무시하지 못한다. 최근 이라크에 있던 수십명의 최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귀국시킨 것이 좋은 예이다. 유대인 하나가 인질로 잡히면 온 이스라엘이 나서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귀국시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졌고, 남유다는 나중에 바벨론으로 유수되었다가 70년 후에 되돌아와 성전과 성을 재건하였다. 그후 로마시대에 극심한 반란을 일으킨 것이 화근이 되어 AD70년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었다.

그로부터 2천년, 세계를 떠돌아 다니던 유대인들은 시온이즘 운동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였고, 1948년 5월 드디어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