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박이야기

3-1. 애굽에서 구한 오멜과 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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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사실 해외근무자에게 그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교통이 혼잡하여 운전하기 힘들고 사람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 kotra의 경우 주재국 통계가 기본인데 수출 통계가 몇 년 후에 나오고, 일목요연하지도 못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다녀 온 후 이집트는 나에게 중요한 국가로 바뀌었다. 성경 유물을 모으고, 성지를 탐사하는 첫 나라가 된 것이다. 그 전에는 기자 피라밋이 최고였고, 저녁 먹고 바람쇠러 가는 곳도 피라밋이었으나 이제는 가는 곳이 성지로 바뀌었다. 람세스와 숙곳을 방문하였고, 시내산에도 몇 번이나 올라갔다. 시내산에 갈 때는 여분의 기름통을 여러 개 싣고 가야 했는데, 당시에는 시나이반도에 주유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국경 에일랏에 도착하니 산 비탈에 대문짝 만한 히브리어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아내는 그걸 샬롬이라고 읽었다. 나는 아내가 대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아내와의 약속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기로 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섰는데, 당시 주재원들 사이에서는 주말에 그 집에 가면 헛방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올드 카이로에 있는 성가족 피난교회를 비롯하여 예수님 피난지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느라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중해변의 펠로지움에서부터 텔바스타, 나트룬(수도원), 가르누스(수도원), 무하라크(수도원)까지 나일강을 따라 모두 방문하였다. 무하라크수도원은 카이로와 룩소의 중간 지점에 있는데, 군 검문소에서 통과시켜 주지 않아 당황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준외교관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편도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장갑차로 에스코트 해 주었다. 이 외에도 수에네(아스완, 29:10, 30:6), 멸망의 도시로 예언된 노(룩소, 46:25, 30:14)에도 방문하였다.

 

당시 카이로무역관에는 꼽틱 정교회에 다니는 현지직원이 있었는데, 그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자료 수집은 물론 책이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고, 애굽인들의 관습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었다. 그가 우리 사무실에 오기 전에는 이슬람 국가인 애굽에서 물건을 구하는데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

박물관 전시품 중에 이집트 카말 후세인사가 제작한 목제 오멜과 스아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집트 정부 공인 도장이 찍혀 있다. 오멜은 만나 부피를 잴 때 사용한 용기이고, 스아는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대접할 때 고운 가루를 재었다는 도구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나중에 이스라엘 헤브론에서 구한 되(Rub)와 말(Saa)보다 용량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낡아서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애굽 오멜과 스아는 2.2리터, 7.2리터가 정확하게 들어 갔다.

애굽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금송아지이다. 출애굽 때 아론은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그걸 보통 순금 송아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형상이라는 단어 맛쎄카는 성경에서 덮개(25:7) 또는 이불(28:20)로도 사용되었다. 만들었다’(개역개정, 32:4 상반)는 단어도 모세가 금으로 법궤를 쌌다(25:10-11)라고 할 때의 싸다라는 단어 아사와 동일하다.

그런 점에서 아론은 어쩌면 나무로 송아지를 만든 후 그것을 금으로 쌌을 가능성이 있다. 십계 영화에서도 아론이 나무로 송아지를 만든 후 금으로 싸는 장면이 나온다. 그랬기 때문에 송아지 형상이 불에 탈 수 있었을 것이다(32:20). 세계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송아지도 애굽에서 구한 돌 송아지에 금칠을 한 것이다. 귀국 길에 파손되어 상심하였으나 잘 수리한 후 전시를 해 두고 있다. 참고로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이 만든 두 개의 송아지는 금송아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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