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박이야기

1-2. 하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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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이름도 모르는 병에 걸렸다. 아버지 장로님은 화양읍까지 가서 만주의원 장로님을 모셔 왔으나 진맥을 하면서도 이게 독감도 아니고, 장질부사도 아니고 무슨 일인지 병명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병은 끈질기게도 꼬박 한 달을 끌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서 성경을 읽는 일 뿐이었다. 한 달이 지난 후 병은 나았으나 학교는 이미 여름방학에 들어 가 있었다.

이름 모르는 이 질병은 중학교 2학년,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때에도 나를 괴롭혔다. 여름방학 전에는 기말 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나는 4년 동안 이 시험을 보지 못하였다. 학교성적은 간신히 중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내 기억이 어느 정도 정확한 지 확인해 보려고 중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았다. 거기에는 중학교 1학년 때에 18, 2학년 때에 30, 3학년 때에 18일을 결석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무려 58일을 결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주말과 여름 방학을 합하면 실제로 앓아 누운 기간은 한 달이나 되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들은 의견란에 대체로 불량 학생은 아니나 결석이 많음”,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함등으로 적어 두었다.

나는 이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하거나, 당시 시골에서는 누구도 하지 않는 조깅을 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하였다. 어머님도 귀한 아들을 위해 기르던 염소나 닭을 잡아 미리 보신을 시켜 주었으나 이 질병은 시름시름 찾아 와 어느덧 나를 점령해 버리곤 했다.

내가 병에 걸리면 어머님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여러 번씩 내 이마에 손을 엊어 열을 재는 척 하면서 기도를 하셨다. 누님들은 하루 세 차례씩 한약을 다려야 했고, 한약을 잘못 다려 시커멓게 탄 날에는 어머님에게 야단을 맞곤 했다. 나 때문에 온 집안은 종일 어수선했고, 쓰디 쓴 한약을 마셔야 하는 나도 진절머리가 났다.

하루는 한약 위에 검정 숯가루가 둥둥 떠 있어서 건져 내려고 했으나 부모님은 그냥 마시라고 하셨다. 이를 지켜보던 누님들 표정이 묘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마셔야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누님들은 그것이 개똥을 구워 빻은 숯이었다고 가르쳐 주었다. 개똥을 줍기 위해 온 가족이 동원되었고, 몇 일만에 이모님 동네 개천에서 어머님이 주울 수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거의 세 달이나 앓아 누워 있었고, 나는 부모님 보기에도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였다. 아들을 보는 어머님의 근심도 날마다 깊어져 갔다. 그즈음 나는 희미하나마 무언가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나는 왜 여름이 오면 해마다 아프게 되는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 아닐까?

어느덧 나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이제 제가 졌습니다. 제 병을 고쳐 주시면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나는 이 기도문을 잊지 않으려고 성경 표지 안쪽에 기록해 두었다. 그 후 병은 서서히 나았고, 그 다음해부터는 7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성경을 펼 때마다 주의 종이 되겠다는 기도문이 눈에 들어 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성경을 펴는 것이 두려워졌다. 몇 달 후에는 그 기도문을 보지 않기 위해 표지 안쪽에 풀칠을 하여 봉해 버렸다. 그리고 그 일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내가 살던 시골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기가 처음 들어 왔으므로 우리 집에는 아직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었다. 엠프라는 작은 나무상자가 있었으나 그 통에서는 주로 연속극이나 유행가가 흘러나왔으므로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책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었고, 성경책은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항상 있었다.

4년 동안에 나는 성경을 6번 정독하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학생회 예배에 가려면 성경책이 필요했으므로 아버지를 졸라 구한 그 성경책은 나의 병상 반려자가 된 셈이다. 창세기를 읽고 나면 끝부분에 가로 막대기를 하나 긋고, 다음 번에 읽으면 세로 막대기를 그어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요한계시록까지 자를 이루고도 막대기가 하나씩 더 그어져 있었다. 한의원 장로님은 진맥하러 오실 때마다 책을 너무 보면 안 낫는다고 나무라셨지만, 그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나는 다윗이 골리앗을 맞힐 때 사용했다는 물매가 정말 보고 싶었다. ‘+=물로 만든 회초리일 텐데 물로 어떻게 회초리를 만들었을까? 그건 아마도 기다란 비닐 봉지에 물을 담은 것일거야. 초등학교 소풍가는 날 교문 밖에서 아주머니들이 팔던 노란 음료수 비닐봉지 같은 것일거야. 그런데 그 옛날에 비닐 봉지가 있었을까?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어떻게 돌을 던지고 골리앗을 때려 눕혔다는 것일까?

라헬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훔쳐 나왔다는 드라빔도 궁금했다. 라반이 야곱을 쫓아 와 도망은 갈지라도 왜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라고 했는데 드라빔이라는 그 신발은 아마도 짚신일거야. 그래서 라헬이 그 위에 폭닥하게 앉을 수 있었던 게지.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개역한글판, 31:30-32)

이 부분을 처음 읽은 시기는 중학생 때였으므로 이제 막 검정 고무신을 벗어 던지고 운동화를 신고 다닐 즈음이었다. 그러나 밤에 교회에 갈 때는 다시 검정 고무신을 신어야 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교회에서 신발이 바뀌곤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에 가자라고 전도하면 친구들이 예배당에 갔더니, 내 신 훔쳐 가려고, 눈감으라 하더라라는 노래로 거절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라헬이 자기 아버지의 가정수호신 드라빔 훔친 일을 창세기가 신을 도적질 했다라고 기록했으므로 신발을 잃어 먹지 않으려고 애 쓰던 중학생 입장에서는 그것이 신발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 신발은 한국 사람만 훔쳐 가는 게 아니라 성경 인물들도 훔쳐 갔구나. 그 신발이 도대체 얼마나 비싸고 귀한 것이길래 야곱이 자기 가족을 죽여도 좋다고 말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한 짚신이 아닐 거야.’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성경을 읽으면서 유독 성경에 나오는 물건에 관심이 많았다. 그때는 국어사전이나 성경주석 같은 것이 집안에 없었고, 성경보감이라는 책만 한 권 있었다. 따라서 아버지 장로님이 과수원에서 돌아 오시면 저녁에 질문을 하곤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이런 관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이 습관은 세계기독교박물관을 준비하는데 매우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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