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박이야기

1-1. 소치기 소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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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식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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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싸움으로 잘 알려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상설 투우장이 만들어졌지만, 처음 5년 동안은 내가 자란 서원리 개천에 임시 스타디움을 만들어 경기를 진행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아이들이 소를 먹이던 그 자리이다. 그때 아이들은 심심풀이로 소싸움을 붙이곤 했다. 장남으로 태어난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돌아 오면 소에게 꼴을 먹여야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작된 이 일은 내가 고3이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났다.

친구들은 소에게 꼴을 먹이는 서너 시간 동안 보통 장기나 바둑을 두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취미가 없었다. 바둑은 너무 재미가 없고, 장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주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

그날도 소에게 꼴을 먹이면서 책을 읽다가 잔디밭에 잠시 드러누웠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 반짝하는 것이 보였다. 비행기였다.

가만 있자, 비행기가 가고 있네. 나는 지금 소를 먹이는데, 누군가는 비행기 타고 간다는 거 아니야.’

김포에서 김해로 오가는 비행기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내 머리 위로 날아 다녔지만, 그날은 비행기가 눈에 꽂혔다.

바로 이거로구나. 나도 자라면 비행기 타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내 손아귀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쥐어졌고, 나는 그 비행기가 산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큰집에 가서 사촌 형들이 공부하는 지리부도를 꺼내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서쪽으로 가면 프랑스이고, 북쪽으로 가면 독일이구나. 프랑크프르트, 함부르그 ……

이런 식으로 지리 공부를 하니 너무 재미있었고, 어떤 때는 소 먹이러 가는 시간을 잊어 먹어 부모님께 꾸중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여전히 청도를 벗어나지 못한 촌놈이었다. 80리 떨어진 대구에 처음 간 것이 대학 예비고사 치를 때였으니 말이다.

그때 열차를 타고 대구로 들어 가면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차 위로 차가 다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승용차를 일렬로 세우면 지붕이 울퉁불퉁하여 현실적으로 차가 다닐 수 없을 것이고, 버스를 일렬로 세우면 그 위로는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도로가 그 정도로 좁고 차도 많은 것일까?

고가도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김종식은 차 위로 차가 다닌다는 말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나는 말이 소치기 소년이었지 아버지의 소 한 마리와 염소 두어 마리를 몰고 나가 서너 시간씩 꼴을 먹이던 동네 아이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 내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대학 4학년 때 총학생회장으로 내정되어 문교부(교육부)가 주관하는 대만 산업시찰단에 참석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을 하기 전에 매우 까다로운 신원조회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여기에 걸린 것이다. 청도경찰서에서 나온 형사가 “5촌 아저씨 김ㅇㅇ씨가 빨갱이에게 부역한 일이 발견되었다라고 말하고 가더니 연좌제에 걸려 평생 비행기 타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전에 4촌 형님도 중앙정보부 입사시험에 합격했으나 이 문제로 낙방하더니 결국 나에게도 불행이 찾아 오고 만 것이다.

그래도 기도하자. 비행기는 타야 하니까.’

좌절감에 빠지기도 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당시 서울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연좌제에 걸렸다는 보고가 올라 와 우리가 보증을 서 주었으니 계획대로 여권을 발급받고, 이번 여행기간 중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하여 대만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 왔고, 그 다음부터는 이미 해외여행을 다녀 온 실적이 있으므로 해외여행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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