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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옥션, 그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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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는 옥션을 하기 전에 경매할 물건에 번호를 붙여서 몇일 동안 미리 전시를 해 둔다. 물건을 구경하다가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번호를 메모해 두었다가 경매하는 날 참석하여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된다.

경매는 퇴근시간 이후에 시작하는데, 참석자들은 입구에서 개인번호표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점을 찍어 둔 물건의 최저 가격이 제시되면 그때부터 번호표를 들어서 사겠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가격이 점차 올라가면 포기를 할 수 있으나, 최후까지 들고 있다가 가장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게 되면 그 물건을 반드시 사야 한다.

내 경우는 거의 매번 구할 물건은 많고, 예산은 한정적이어서 미리 엄선해 두어야 했다. 반드시 사야 할 물건이 있지만, 때로는 이미 가진 물건과 중복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일정 기간 후에 귀국해야 하므로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그 물건을 소장할 수 없게 된다는 한계성이었다. 그래서 금전적 갈등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 내 숙명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옥션이 끝난 후 한 유대인이 다가와서 나에게 말했다.

너는 한 번 찍으면 꼭 끝까지 가더라. 그래서 오늘 내가 중간에 포기해 준 것 알아?”

세상에. 유대인에게도 이런 면이 있나 싶어서 나는 적잖게 놀랐다. 그 다음부터는 이스라엘에 이런 유대인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옥션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전반적으로 고가품이거나 종류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2년 정도 매주 참석하고 나니 새로 구입할 물건들이 잘 나타나지 않아 자연히 거리가 멀어졌다. 대신 발품을 팔아서 구하는 물건들이 훨씬 많아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 물건 구하는 요령도 늘었지만 미리 부탁해 둔 사람들에게서 수시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한국 인터넷 경매에서 관심있는 물건을 하나 발견하였다. 1830년에 발간된 미국 성경 1권이다. 그것은 아브라함 링컨이 사용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시대에 발간된 것인데다 외형이 똑 같았다. 미국 대통령들이 취임선서 할 때 손을 얹는 링컨의 성경은 링컨박물관에 있으므로 소장할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성경이므로 소장할 가치가 충분했다. 

인터넷 경매는 미리 가격을 적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가격만 올리는 셈이므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가 마감 직전에 갑자기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낙찰받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입찰마감 1시간 전까지는 좋은 물건일지라도 경매 사이트는 일반적으로 조용하다.

나는 그날 정시에 퇴근하여 미리 컴퓨터를 켜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컴퓨터가 고장이거나 인터넷 연결이 시원찮으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므로 3시간 전에 만반의 준비를 끝낸 셈이다.

입찰 시작가격은 단돈 10만원, hdv라는 사람이 몇일 전부터 이미 응찰해 둔 상태였다. 마감시간이 2시간으로 다가오자 가격은 102,000원으로 올라 갔다. 잠시후 104,000, 107,000, 109,000원으로 또 올라 갔다. 드디어 10초전, 나는 222,000원을 써 내고 마감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마감이 임박하여 여러 사람이 달라 붙으면 시간이 3분씩 자동 연장 되므로 그만 연장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224,000원을 써 내었고, 나는 10만원을 올려 312,000원을 써 내었다. 다른 사람이 314,000, 420,000원을 써 내었고, 시간은 또 3분 연장되었다.

sayan이라는 사람이 666,000원까지 써 내었다. 이제 웬만한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갔고 나와 그 사람만 남아 30분 동안 손 떨리는 경쟁을 더 벌였다. sayan이라는 사람도 이 책이 얼마나 필요하길래 달라 붙나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게도 꼭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양보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마감 10초전에 720,000원을 썼다. 이번에는 그 사람이 1,000,000원을 찍었다. 나는 가격이 너무 오르는 것을 우려하여 1,050,000원을 불렀더니 이번에는 그 사람이 1,300,000원을 적었다.

이제 마지막 3분이 남았고, 더 이상의 시간 연장은 없다. 내가 먼저 1,350,000원을 적은 후 기다렸다. 3분 동안에 전기가 나가거나, 인터넷이 끊어지거나 느려지면 나는 끝장이었다.

마감 10초전, 예상대로 경쟁자는 1,500,000만원을 써 내었고, 그 사람이 다시 응찰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나는 느긋하게 1,510,000원을 써 넣었다. 최종 마감 2초전에...

입찰이 끝난 후 나는 값진 전시품을 얻게 되어 몹시 기뻤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건 기쁜 일이 아니었다. 낙찰 가격이 무려 151만원, 미화로 1,600달러. 낡아 빠진 책 한 권이. , 슬프다.

나는 도대체 이 ID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입찰 운영자가 장난 친 것은 아닌지? 그 동안 모아 둔 스크랲들을 모두 꺼내 보니 그는 아마도 천주교 신자인듯 했다. 이미 천주교 서적 2천권, 기독교 서적 4천권, 기타 많은 책들을 인터넷에서 구입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사람 실명은 모른다.

한국이나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입찰에 많이 참가해 보았으나 이런 입찰은 처음이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내가 어떤 물건을 찍으면 유대인들이 포기해 주기도 했는데...

어쨌든 1830년에 발간된 미국 성경 하나가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어서 기쁜 날이었다. 195년이나 된 골동품이기도 하지만, 링컨시대의 성경책이라는데 가치가 있다. 연대만 따지면 1700년대의 히브리어 성경책이나 중세시대의 에스더서도 있지만, 이제 이 책으로는 아이들에게 기도하는 대통령 링컨의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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