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박이야기

4-4. 성경 물건 수집 에피소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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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굵은 베가 40번 나오므로 나는 그것을 꼭 구해야 했다.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쳤더니 그 이방 도시 사람들이 집집마다 사람마다 금방 준비할 수 있었던 특별한 옷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십중팔구 그것을 삼베 옷으로 보며, 현대인의 성경도 그것을 굵은 삼베 옷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성경 식물을 연구하는 아내는 진작부터 성경시대 중동에는 삼이 재배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도 삼베 옷을 수집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일까? 참으로 많은 책들을 뒤졌지만 영어 자료들은 그것을 sackcloth 즉 염소나 낙타 털 또는 면화나 마로 짠 거친 옷으로 설명하고 있었고, 성경 주석들도 대동소이 하였다. 유럽 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편집한 아가페 성경사전도 굵은 베를 염소털로 짠 거칠고 거무칙칙한 천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네게브사막과 거기에 사는 베두인들은 성경 유물을 구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실제로 물건도 구할 수 있었으므로 나는 거의 매달 네게브사막을 찾았다. 그리고 한 베두인 외딴 천막에서 정말 염소털로 짠 거칠고 낡은 남자 외투 한 벌을 발견하였다. 나는 온갖 아양을 떨어가면서 그들의 조상때부터 입었던 염소털 외투를 흥정하여 거금 2,500달러를 지불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급히 텐트를 빠져 나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 달 후에 여자용 염소털 외투를 다른 곳에서 또 발견하였고, 같은 가격으로 또 사 버린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굵은 베옷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니었고, 나로서는 5,000달러로 다른 귀한 전시품들을 살 수 있었는데 헛방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던, 나는 염소털 외투 2개를 랍비에게 들고 가서 이게 성경에 나오는 굵은 베옷 맞지요?’라고 물었고, 랍비는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외투를 밀어 버렸다. ‘굵은 베는 이런 것이 아니라, 나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곡식 사러 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갔을까?”

나는 곡식 담는 자루를 가지고 갔겠지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것이 바로 굵은 베와 똑 같은 단어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하! 니느웨 사람들이 특별한 옷을 준비해 둔 것이 아니라, 집집마다 몇 개씩 있던 빈 자루를 꺼내 끈을 매고 허리에 걸친 것이로구나하고 감탄하였다. 그리고 무릎까지 오는 속옷을 벗어 던지고 자루를 걸쳤다면 속이 들여다 보일 뿐 아니라 매우 불편했을 텐데, 그것이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동 사람들의 관습임을 알게 되었다.

 

랍비의 가르침은 내가 비파를 판별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수금은 이스라엘에서 구했으나, 성경에 나오는 비파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어려워 우선 중국에서 당 비파를 하나 구하였다. 그리고 유럽에서 류트도 구하였다. 사실 이것들은 페르시아의 바르바트라는 악기가 동양으로 건너와 당 비파가 되었고, 서양에서는 류트가 된 것이다.

나는 페르시아가 팔레스타인에 영향력을 미치기 전인 다윗시대에 이미 비파가 성경에 나오므로 팔레스타인 비파는 이들과 다를 것이라는 짐작만 해 오다가 히브리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비파의 히브리어는 네벨이었고, 그것은 가죽부대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랍비가 굵은 베를 가르쳐 준 방식대로 비파와 가죽부대의 연관성을 떠올리며 수장고에 들어 가자 거기에는 울림통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비파들이 이미 여럿 수집되어 있었다.

 

성경에는 역청도 여러 번 나오는데, 노아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에 역청이 칠해졌다. 창세기 14장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던 싯딤 골짜기 전투에서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역청 구덩이에 빠졌다. 역청도 궁금하지만, 역청 구덩이는 또 어떻게 생긴 것일까?

예루살렘 목사님 한 분이 하루는 밤알 만한 까만 물건을 내게 보여 주면서 유대광야에서 주운 역청이라고 했다. 나는 박물관 준비하는 걸 말할 수 없었으므로 무관심한 척 하면서 그래요?’ 하고 말았다. 그것이 역청인 것 같지도 않았고, 유대광야라는 장소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1주일을 각오하고 사해 주변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먼저 요르단으로 넘어 가 싯딤 지명이 있는 곳을 샅샅이 뒤지고 주민들에게 문의하였으나 역청을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소돔과 고모라 주변으로 내려가 한 동굴 천장에서 역청을 발견하였으나 역청의 비중이 너무 낮아 사진만 찍고 말았다.

나는 도로 이스라엘로 건너와 이번에는 여리고 주변에서부터 사해 남쪽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사해에서 머드욕장을 발견한 외에 별 다른 수확은 얻지 못하였다. 역청 구덩이를 찾다가 사해 주변 탐사를 하고 사진은 잘 찍었으나 역청은 못 구한 셈이다. 그 넓은 지역에서 창세기 유적을 찾는다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그 다음해, 이번에는 사해 유황을 채취하러 나섰다가 내친 김에 역청 구덩이까지 찾아 나섰다. 감사, 감사하게도 검은 역청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유대광야 절벽 아래에 딱딱하게 굳은 역청이 흙에 파묻힌 채 넓게 분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오므로 박물관에는 그것들도 필요하다. 광야의 환경은 다윗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고, 거기서 살아가는 베두인 생활방식도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막대기와 지팡이를 알기 위해서는 유대광야로 나가야 했다.

광야에 양떼가 보이면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고, 그리고 천천히 차에서 내려 양떼를 구경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인사를 건네면서 음료수를 주거나 양떼 사진을 찍으면서 칭찬도 해 주어야 한다. 광야에 사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매우 경계하므로 안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의 손에 있는 지팡이지만 급하게 거래를 진행하면 망치기가 쉽다.

나는 손에 잡고 있는 것, 그거 이름이 뭐냐?’로 시작하여 때로는 한 번 잡아 보면 안 돼요?’라고 얼러기도 했다. 우리 아이가 동행할 때는 목동이 쉽게 긴장을 풀지만, 항상 그렇지는 못했다. 손때 묻은 목동 지팡이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느리고도 번거로운 흥정과 인내가 필요했다.

흥정의 1단계는 목동과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이거 내가 기념으로 가지고 싶다라는 의사를 전하는 것인데 십중팔구는 제2단계에서 거절을 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야에는 나무가 귀하여 지팡이 만드는 것이 쉽지 않고, 손에 익은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거절을 하든 말든 제3단계는 내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인데, 아이들의 막대기는 보통 5달러를 제시했다가 10달러를 주면 성사가 된다. 그러나 어른의 지팡이는 10달러를 제시한 후 20달러 정도를 주어야 거래가 성사되었다.

요르단에서는 숙곳으로 올라 가다가 한 노인 목동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발견하였다. 아름답게 조각이 되어 있었고, 귀티가 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10달러에 시작하여 200달러까지 제시를 했는데도 흥정이 안 되었다. 그래서 내가 물어 보았다.

이 돈이면 다른 지팡이 몇 개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안 팝니까?”

그는 오히려 안심하는 듯 말했다.

이것은 5대째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지팡이입니다. 이걸 팔고 내가 어떻게 조상들이 살던 그 집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까? 미안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물러섰다. 그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한 지팡이는 모두 20개가 넘는데 그 중에는 에셀나무로 만든 막대기, 공사장 플라스틱 파이프로 만든 지팡이, 갈대 지팡이, 철장(鐵杖)도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아 오던 동방박사의 길고 구부러진 지팡이는 하나도 없다. 세계 80개국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것은 구경도 못 했다. 튀르키예 톱카프박물관에서 모세 지팡이(진위 불구)가 전시된 것도 보았으나, 그것도 일반 지팡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법궤 속에 들어 가려면 135cm를 넘지 않아야 했다. 그림 속에서나 보던 그 길고 구부러진 지팡이는 아마도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시편 234절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원어는 막대기와 지팡이로 막대기가 먼저 나온다. 우리는 오른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다가 그것으로 늑대를 물리치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있다가 구덩이에 양이 빠지면 양의 목을 걸어서 건져 올린다는 해석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해석일 것이다. 막대기와 지팡이를 함께 들고 다니는 목동은 현실적으로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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