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박이야기

4-2. 젖과 꿀이 흐르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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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3월말, 드디어 성경유물 수집 리스트를 들고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매우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마친 후 시내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그리고 마음은 벌써 성경 물건을 찾고 있었다. 내다보이는 시골 동네들, 저기 가면 헛간에서 타작기를 구할 수 있을까, 쟁기와 멍에를 구할 수 있을까?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물 호텔에 도착한 후 나는 방에 걸린 달력을 보다가 매우 놀랐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달력의 빨간 글자 세어 보는 것이 하나의 낙인데, 이스라엘 달력은 성력(聖曆)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 수전절, 부림절, 안식일 …… 지금 시대에 성경대로 공휴일을 지키는 나라가 있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나는 호텔비를 절약하기 위해 3일만에 서둘러 집을 구하고 임차계약을 했다. 샤론평야 작은 언덕위 동네라서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으면서도 지중해가 가까웠고, 창고가 있는 2층 연립이었다. 우리가 사용할 창고는 주인 부인이 그림 그리던 작업실이었으므로 안전하게 성경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집은 구했으나 아직 가구가 없으므로 집안은 휑하였다. 빨리 주말이 되어야 쇼핑을 하겠는데 주말까지는 몇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몇 일 사이에 쓸 만한 헌 가구들이 골목에 막 쌓이기 시작했다. 분명 이삿짐은 아닌데 웬 가구들이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걸까?

너무 이상해서 이웃에게 원인을 물어보았다. 그 이웃은 자기도 아침에 헌 가구를 내어 놓았는데, 그것은 유월절을 앞두고 누룩이나 누룩이 들어간 과자 부스러기들을 청소하는 김에 개비할 가구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주워 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된다고 했다. 나는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3-4년 동안 쓰다가 버려도 될 만한 가구들을 한가득 들여다 놓았다. 유월절 직전에 이사오는 바람에 가구비를 완전 절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런데 다른 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호텔에 있을 때 마트에서 구입한 쌀이 떨어져 사러 갔더니 몇일 전에 팔던 쌀코너와 그 주변이 모두 흰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중간중간에 히브리어가 적힌 쪽지들도 붙어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로서는 당황스럽지만 태연하게 천을 들어 올리고 물건을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때 직원이 쫓아 오더니 지금은 누룩이나 누룩 재료를 팔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나를 매니져에게 데리고 갔고, 매니져는 나에게 귀속말로 힌트를 줬다. 그리하여 나는 이웃 아랍 동네 마트로 가서 쌀을 구해 먹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성경사전에 나오는 성경 물건은 수 백 가지이지만 실제로 구해야 하는 것은 천 가지도 넘고, 거기에다 성경 식물과 동물 그리고 광물도 모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기후와 관습도 익혀야 하고, 성지에 대해서도 공부 해야만 했다.

제한된 3-4년 동안에 이 모든 것을 이루려면 아무래도 주변 유대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가입해 둔 국제로타리클럽을 먼저 찾아갔다. 첫째 날, 그들은 나에게 인사할 기회를 주었고 그날부터 나는 질문들을 쏟아내었다.

그때 내가 한 첫 번째 질문은 이스라엘에 랍비가 몇 명이나 있느냐였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도로 질문을 했다. “한국에 변호사가 몇 명이냐?”는 것이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고, 자기도 이스라엘에 랍비가 몇 명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인 줄 알았다. 마치 예수님처럼 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다음에 그가 말했다. 랍비는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되는 것이므로 수시로 인원이 변하고, 일반인들은 그런 숫자에 관심이 없으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유대인들의 자녀 성인식이나 유월절 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회당을 방문하여 유대인들의 예배 의식을 보거나 랍비와 회당지기 그리고 교인들과 사귀었다. 나중에는 초정통 유대인들이 모이는 브네이브락회당(19:45)에도 나가고, 작은 회당들을 순례하면서 진귀한 물건들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래도 가장 많이 참석한 회당은 아무래도 집이 가까우면서 규모가 있는 헤르젤리아 회당이었다. 첫 번째 안식일에는 큼직한 카메라를 들고 가서 사진을 찍으려다 안식일에 사진을 찍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므로 찍지 말아 달라는 쓴소리를 들었고, 두 번째 안식일에는 볼펜을 가지고 가서 메모를 하려다 한 글자 이상 적으면 안 된다고 제지를 당했다. 기분이 상했으나, 참아야 했다.

회당에서는 무엇보다 랍비들을 사귈 수 있었는데, 랍비 암논은 자녀 결혼식에도 우리 부부를 초청해 주었다. 그리고 수시로 나는 그의 사무실로 찾아 가 많은 질문들을 할 수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할례식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도 그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한 번은 집회를 한다기에 찾아 갔더니, 텔아비브의 한 대강당에 천 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 교회로 말하자면 그는 큰 부흥 강사였던 것이다. 내가 코셔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한사코 거절했는데, 그때 그의 한 직원이 귀띔해 주기를 선생님이 식당에 가시면 식사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와 안수해 달라고 머리를 내밀기 때문에 식사는 늘 사무실에서 하신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이방인이므로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귀국 무렵, 랍비 암논은 몇 박스나 되는 자료들을 주었는데 나는 그 유대 관련 자료들을 모두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랍비나 초정통 유대인들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는 지금도 그들이 바리새파 전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유대인 가정에서 본 안식일 만찬은 단순할 뿐 아니라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는데, 랍비 가정에서는 식탁도 풍성하고 그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의식을 진행했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젖과 꿀도 수집해야만 했다. 실제로 오래된 우유병과 우유 배달통, 교유기, 치즈 등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꿀 종류로는 벌꿀과 석청(石淸)과 대추청()과 쥐엄열매청까지 모두 수집하였다. 그러나 랍비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건 에레츠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농사지을 수 있는 가나안 땅을 말하는 관용어라고 설명해 주었다. 젖이 무엇인지, 꿀이 무엇인지 거기에 너무 매달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하!” 그제서야 내 머리에도 답이 떠올랐다. 바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다. 우리가 삼천리 반도라고 말하면 머리에 먼저 한반도를 떠올리지만 삼천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묻지 않듯이, 이스라엘에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냥 이스라엘 땅으로 알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 와 삼천리를 검색해 보니 주로 삼천리 자전거와 삼천리 잡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었고, 내가 알고자 하는 한반도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비유적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삼천리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퀴즈를 내었더니 십중팔구 한라에서 백두까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에서 재어 보니 직선거리로 980km, 그것은 삼천리가 아니라 2,500리도 안 되었다.

나는 초등학생때 삼천리를 서울에서 부산까지 천리, 서울에서 의주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흥까지 천리라고 배웠으나 그렇게 나오는 사전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오히려 서울에서 함경북도 끝까지 천리라고 나오는 곳이 있었으나, 서울에서 온성까지는 1500리가 넘었다. 삼천리는 정리된 개념이 없고, 관용어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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