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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때의 예수님 식사자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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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복규 작성
  •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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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성공적인 광주 전시회 소식 감사합니다.
놀라운 충격과 감동들, 계속 이어질 줄 믿습니다.
한 가지 또 여쭤봅니다.
마태복음 26장에도 나오는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원어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식사했다는데,
그럼 예수께서 빵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잔을 주실 때도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셨을지,
아니면 그 대목에서는 다들 일어나 앉은 자세였을지 궁금합니다.
이건 유대인들을 많이 만나신 장로님만 답해 주실 수 있을 듯해서 여쭤봅니다.
요즘 교회에서, '성경 속의 생활풍속' 강의를 매주 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장로님의 자료와 조언도 귀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늘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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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김종식님의 댓글의 댓글

  • 김종식
  • 작성일
귀한 일 하고 계시는군요.<br />
<br />
이 부분은 한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그래도 유럽인 보다는 이해하기 더 쉬운 편입니다. 침대와 의자에서 생활하는 서양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 합니다.<br />
<br />
우선 한국이나 서양식 관습을 완전히 내려 놓고 중동식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도 네게브 사막 언저리에 사는 베두인 집에 초청받아 가면 그들은 비스듬히 누워(기대어) 음식을 먹습니다. 우리가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 팔베게 자세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매우 비슷합니다. <br />
애석하게도 2천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살다 돌아 온 유대인들은 이런 모습으로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식탁에 앉아서 먹으니까요. 심지어 유월절 만찬은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이 때에도 그들은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습니다.<br />
<br />
베두인 텐트나 사막 언저리에 있는 베두인 집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우선 그들의 집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홀(거실)에 벽을 따라 죽 돌아가며 사방에 매우 큼직한 방석 겸 베개들이 이어져 놓여 있습니다. 이 방에는 여자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자는 손님을 위하여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이 다 되어도 남자 아이가 음식을 들고 나가게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참으로 귀한 손님 세 천사가 왔을 때에 부인 사라가 왜 텐트 안에서 웃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안에 있지만 사실은 손님과 주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듣고 있는 것입니다.<br />
그러나 내가 그 집에 두 번째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 집니다. 그 때는 손님이 아니라 형제가 되므로 여자가 음식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내가 그 집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br />
<br />
이런 전통은 오만에도 비슷합니다. 다만 집 구조가 텐트 형식이 아니라 그들은 토담집을 짓고 사는데, 문이 작아서 대낮에도 컴컴합니다. 드라크마를 잃으면 불을 켜서 샅샅이 찾아야 하는 그런 집 구조입니다. 이 때에도 첫 방문 때에는 남자들이 그집 안방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br />
<br />
아브라함 전통을 이어 살고 있는 베두인 집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음식 먹을 시간이 되면 여자가 차려 준 음식을 남자 아이가 들고 나오는데, 음식상은 우리 한국의 앉은뱅이 식탁처럼 생겼습니다.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테이블식 식탁이 아닙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은 유럽 사람이 유럽식으로 그린 그림이므로 생각에서 완전히 지우셔야 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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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상이 가운데에 자리 잡으면 주인과 손님들이 베개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식을 먹으려고 일어나서 상에 둘러 앉습니다. 왜냐하면 쌀밥을 큰 접시(나이 든 사람들은 오봉이라고 하는 그릇)에 수북히 담은 후 그 위에 다시 생선이나 양고기를 올린 것으므로 빙 둘러 앉아서 오른손으로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br />
이렇게 쌀밥 위에 양고기 올린 음식을 만사프라고 하지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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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이런 음식을 드신 것 같지 않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밀(부자)이나 보리(가난)를 빵으로 만들어 주로 먹었고, 더구나 최후의 만찬에서는 무교병을 먹으므로 상 가까이에 굳이 둘러 앉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도 열 세 명이나 되었으니 벽을 따라 죽 둘러 앉아 베개에 기대어서 음식을 천천히 먹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 내용과도 잘 맞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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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만찬을 하려고 "앉으셨더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밥먹기 전에 편하게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개에 기대어 편히 쉬는 것이지요.<br />
그리고 빵이 나오면 그 자세로 그냥 한 조각씩 떼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전에 설명한 쌀밥이었다면 그 자세로는 먹을 수 없어서 상가로 제대로 둘러 앉아야 합니다. <br />
<br />
무교병은 우리가 빵집에서 사 먹는 그런 빵이 아닙니다. 소위 걸레빵이라고, 한국의 파전처럼 생긴 모습 것입니다. 그런 빵을 보통 후무스 콩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에는 애굽에서의 고역을 상징하는 하로셋 소스가 이용됩니다. 견과류와 사과를 썰어 만든 쏘스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라고 나오는데, 이 그릇은 쏘스 그릇으로 보입니다. 빵을 찢어서 수시로 이 쏘스를 찍어 먹으니까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쏘스만 찍으면 다시 비스듬히 누워서 얼마든지 빵을 먹을 수 있습니다. <br />
<br />
"유대인들은 왜?" 라는 제가 번역한 랍비 책에도 보면, 유월절 만찬에서 아이가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는 순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아이가 "오늘은 왜 우리가 비스듬히 누워서 빵을 먹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순서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는 그렇게 한가로이 누워서 음식을 먹을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출애굽 하였으니 우리가 이렇게 음식을 여유롭게 먹으면서 담소를 하더라도 간섭할 사람이 없으니 다시는 노예가 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br />
<br />
이런 분위기는 예수님 당시에 있었다고 보아도 무난할 것입니다. 출애굽 전통이 지금까지 유월절 만찬에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고, 시대와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고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니까요.<br />
이 전통에 따라, 더구나 만찬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비스듬히 누워서 자유를 즐기는 자세로 만찬을 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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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만찬 때는 지금도 네 잔의 붉은 포도주를 마시는 순서가 있습니다. 특히 "식후에" 마시는 네번째 잔은 예배를 마무리하는 단계 즉 폐회 찬송을 부르기 직전에 마시는데, 이것은 엘리야를 위한 잔입니다. 유대인들은 대선지자 엘리야가 죽지 않고 승천했는데, 말라기 4장 5절에 나오는 대로 크고 두려운 날(메시야가 오시는 날) 이전에 그가 다시 온다고 믿습니다. 이 엘리야께서 빨리 오시기를 기원하면서 네번째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br />
예수님은 이 네번째 잔을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r />
<br />
그러나 이 잔을 마실 때는 어느 누구도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어 마시기는 어렵습니다. 유대인이나 제자들도 다 사람이므로 포도주를 쏟지 않게 마시려면 제대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신 사람은 다시 비스듬히 기대어 서로 담소를 했을 것인데, 최후의 만찬에서는 아마 이 분위기가 엄숙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들을 하셨기 때문입니다.<br />
<br />
질문에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br />
<br />
김종식 관장 드림

이복규님의 댓글의 댓글

  • 이복규
  • 작성일
장로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답변,<br />
고맙습니다.<br />
이제야 소상하게 속시원히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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