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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구리에 발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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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식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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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구리는 입술을 말하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입의 위와 아랫쪽 둘레를 이루는 살로서, 점잖은 한자어로는 口吻(구문), 口脣(구순)이라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입수와리(제주), 입서리(전남), 입수부리(전북), 입소고리(경남), 입수불(경북), 입쌀(경기), 입수월(강원), 입수(평북), 입숙(황해), 입줄기(함경) 등으로도 불린다.

교회에서 한 할머니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했더니 '입수구리에 발린 말로만 사랑하나?'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솔직하게 표현해 주신 그 할머니 덕분에 오늘은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입술에 발린 사랑을 영어로 말하자면 아마도 'lip service'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영어를 '말뿐인 친절'로 비하시킬 수도 있고, '외교적 수사'로 격상시킬 수도 있다.

나는 93살이신 아버지께 가끔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돈 한푼 안 드는 lip service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항상 '허,허'라고 웃으면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다.
아버지에게 애정표시를 하는 것은 경상도 남자에게 금기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걸 배우지 못했다. 이 금기를 깨기 위해 달밤 마당에 나가 몇번이나 연습을 했고, 마누라 앞에서 실습을 거친 후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할머니, '말뿐인 친절'로 보지 마시고, '마음을 담은 인사'로 좀 받아 주시지 그러세요.
어쨌든, 나는 그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오른 적도 없고, 등을 긁어 드린 적도 없다. 노인들을 위해 뭉뚱그려 기도한 외에 특별히 기도해 드린 적도 없다.
그런데,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코코아 한 잔을 빼 드린 적이 있다. 이게 그 할머니를 위한 나의 유일한 파뿌리이다.

요새 학생들은 파뿌리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이야기인즉, 억울하게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 있어서 천사가 정밀 조사를 해 보았다. 과연 세상에서 살 때 거지에게 파뿌리 하나를 준 선행이 있었다. 이 억울한 사람은 천사가 내민 파뿌리에 매달렸다. 주위 사람들이 엉겨 붙자 그는 소리를 치면서 발을 뿌리쳤다. 아뿔싸, 그 바람에 그만 파뿌리가 끊어져 버렸다.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파뿌리가 더 튼튼한 것인지, 코코아 한 잔이 더 튼튼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할머니 눈에 비친 나의 사랑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할머니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을까?

그렇구나. 나는 지금 그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이번 주일에는 먼저 시간을 내어 할머니의 긴 이야기부터 들어 보아야겠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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