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지방(Galilee)

- 예수께서 집중 사역하신 갈릴리호수 서쪽 지방 -


성경구절

ㅇ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23]
ㅇ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요한복음 4:46]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태복음 4:25]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열왕기상 9:11]


성지해설

갈릴리 지방은 갈릴리 호수 주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호수에서부터 서쪽 지중해에 이르는 넓은 산간 지방을 말한다. 예수 당시 200여 동리가 있었고, 각 동리의 평균 인구는 500명 정도였다. 셒포리디베랴 등 하부 갈릴리에 인구가 집중되었으며, 예수의 본거지 가버나움에는 1,700명이 살았다.
예수는 3차례에 걸쳐 갈릴리 지방 전도여행을 떠났다. 1차는 세례를 받은 해인 AD27년 12월부터 다음해 여름까지, 2차는 AD28년 여름부터 다음해 4월까지, 3차는 AD29년 4월부터 12월까지이다. 대부분의 공생애 기간을 갈릴리 전도에 할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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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의 대부분을 갈릴리지방에서 보내셨다.  사진은 갈릴리지방의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다.


주변환경

갈릴리는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지며, 상부에는 해발 1,200m의 산들이 솟아 있다. 솔로몬은 레바논 히람왕에게 이곳의 20개 성읍을 선물로 주었으나 땅이 척박하고 산이 험하여 히람왕이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이에 비해 남쪽의 하부 갈릴리는 해발 600m 정도로서 유실수와 농작물이 잘 자라고, 역사적으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쾌적한 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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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호수 북쪽 먼 곳에서 내려다 본 갈릴리호수와 동네들. 예수님 당시에도 주변 풍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사항
(로마의 갈릴리 전투)

베스파시안 로마 황제는 갈릴리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셒포리, 디베랴 등 거점 도시들을 하나씩 장악해 나갔다. 제2의 마사다로 불리는 요드파트 전투, 육지와 호수에서 6,500명을 죽인 막달라 전투, 5,000명의 유대인들이 최후의 순간에 집단 자살한 감라 전투 등 쉬운 게 없었다.
그러나 갈릴리의 요새들이 무너지자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은 쉽게 정복되었다. 살라딘의 아랍군이 십자군을 무너뜨릴 때에도 갈릴리 지방을 먼저 점령한 후 점차 남하하면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하틴의 뿔’편 참조).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지편 www.segibak.or.kr >  

 

* 위의 내용은 세계기독교박물관(관장 김종식)이 성경 내용과 이스라엘 공식 자료들을 정리하고, 이스라엘에 살면서 수 차례씩 현장을 방문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교회 교육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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