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박물관 김종식 관장, www.segibak.or.kr 유대절기와 관습>
랍비 암논(Amnon)은 텔아비브 인근에 있는 정통 유대인 도시 Bnei Barak에 선교센타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는 너무 유명하여 내가 코셔식당에 초대하여 접대하고 싶다고 말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달라고 머리를 들이대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식당에는 갈 수 없다"고 거절하곤 했다. 그대신 한 번은 두루마리 성지 지도를 선물로 가져 갔더니 "다른 사람에게는 선물도 받지 않지만, 미스터 김이 주는 선물은 이번에만 특별히 받겠다"면서 기꺼이 받아 주었다.

오늘(2002년 11월 28일) 오후에는  할례식이 있으므로 나는 일찌감치 아내와 함께 그의 선교센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12시 20분이 되자 곧 예루살렘 메아 쉐아림으로 향했다. 오후 2시까지 도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랍비는 달리는 차안에서 미리 애기 부모에게 연락하여 우리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두었다.

2시 10분전에 예루살렘에 있는 한 여자고등학교 강당에 도착하였다. 할례식장은 오른쪽의 남자석과 왼쪽의 여자석으로 분리시켜 놓았고, 중앙에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여든 사람수는 남자 여자 각각 50여명씩 되었고, 어린애까지 합치면 100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테이블에는 빵과 음료수, 치즈 등의 음식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잔치집과 같은 정도의 정찬은 아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사진찍기와 행사 메모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할례식 핵심 행사가 열리는 장소를 알아낸 뒤 사진 찍을 자리도 확보해 두었다. 남자들 몇사람은 "이 사진 찍어서 어디에 쓸 것이냐? 사진 찍어서 상업용으로 쓸 것 아니냐?"는 뜻으로 계속해서 "Money?, Money?"라면서 말을 걸어 왔다. 나는 “아니다. 내가 자료용으로 쓸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나는 일찌감치 애기와 부모의 사진을 찍어 두었다. 애기 엄마는 이번이 7번째 애기라고 말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젊어 보였고 이목구비도 뚜렷하여 아름다와 보였다. 그리고 애기를 낳은지 8일밖에 안 되었는데도 애기를 안고 학교 강당까지 찬바람 쐬어가며 외출한 것이 대단해 보였다. 한국 부인이라면 아직 미역국 먹으면서 부은 모습으로 뜨끈뜨끈한 방에 들어앉아 있을 거 아닌가.

2시가 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성전산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아기는 곧 엄마 품에서 아버지 품으로 이동되었다. 왜냐하면, 아기 엄마는 애기를 낳은 후 아직 부정한 기간에 있을 뿐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할례식이 거행될 남자 구역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엄마가 크바트린이라 불리는 다른 여자에게 아기를 넘기고, 그 여자는 다시 크바터로 불리는 다른 남자에게 아기를 넘긴다고 했으나 이 가정에서는 엄마가 아빠에게 아기를 바로 넘겨 주었다.

잠시후 우리와 함께 온 랍비 암논이 미리 준비된 높다란 의자에 앉았고, 무릎 위에다 두툼한 방석을 올려 놓았다. 이날 랍비의 역할은 히브리어로 '산덱Sandek' 즉 애기를 무릎에 올려 두는 일이었다. 원래는 아기의 아버지가 이 역할을 하지만 종종 랍비 또는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이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산덱의 무릎이 적어도 양피를 베는 동안에는 '미쯔베이아' 즉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소나 양을 잡는 제단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랍비 암논이 아기를 받아 무릎에 눕히자 곧 수술 기구를 벌여 놓은 모헬(Mohel 즉 수술하는 사람)이 주위에 빽빽하게 둘러선 애기의 일가친척들에게 기도문을 외우라고 주문하였다. 모헬은 할례를 전문으로 시술하는 종교인으로서 반드시 의사이거나 랍비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모헬은 먼저 아기 기저귀를 벗긴후 고추를 찾아 세웠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 온 알콜을 스프레이로 뿌리더니 고추 끝 껍질(양피)을 집을 수 있는 쇠 집게를 이용하여 고추끝을 일정 부분 집었다. 그리고는 긴장을 풀기 위해 두 손바닥을 모아 잠시 비비더니 가위를 잡았다. 그후 그는 단숨에 집게 밖으로 나온 살점을 잘라 내고 집게도 빼어 버렸다.

붉은 피가 용솟음치듯 솟아 올랐고, 조금전까지 조용하던 애기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모헬은 애기 울음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준비해 온 가루분을 수술 부위 주변에 뿌리고, 탈지면으로 고추를 가볍게 말아 피가 멈추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면으로 만든 기저귀를 덮었지만 피는 금새 밖에까지 붉게 스며 나왔다.
1~2분후 모헬은 아기의 기저귀를 벗기더니 고추를 말아 둔 천까지 모두 벗겨 내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것으로 싸맨 후 붕대를 둘러 1회용 기저귀까지 채웠다.

주위를 둘러선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문을 외우다가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 구역에 못 들어오는 것이 안타까와 남자구역 입구에 우루루 서서 아기를 둘러 싼 남자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태까지 산덱 역할을 하던 랍비는 할례가 끝나자 아기를 들어 올려 축복 기도문을 외운 후 아버지에게 건네 주었다. 이제 할례는 끝이 났다. 아주 조금 베어낸 양피도 얼마 전까지 모헬의 수술 기구 옆에 놓여 있었는데 누가 가져간 것인지 없어져 버렸다. 모헬이 수술 기구들을 정리해 넣을 때까지만 해도 모헬은 그 양피에 손을 대지 않았었는데...

애기가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는 이유에 대해 랍비는 "하나님이 8일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하셨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라고 말하면서 "다만 의사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이 되어야 피가 쉽게 멈추어지고, 그 전에는 아기의 피가 아직 Hard하지 않기 때문에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난 지 8일 이전에는 절대로 할례를 행하지 않지만, 만약 아기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할례 의식을 미루어 병이 나은 날로부터 8일 후에 할례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카메라 가방을 정리한 후 주위를 둘러보니 랍비와 모헬은 물론 아기와 아기 아버지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행사가 끝났으므로 아기는 엄마 품으로 돌아 갔고, 랍비와 모헬은 자기 갈길로, 그리고 아기 아버지는 두 분의 소중한 손님을 전송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것이다. 실내에는 축하객들만 남아서 음식을 먹거나 담소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남아 있기가 쑥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제 이곳에서 할례식을 했더냐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나도 급히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는 랍비 암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도 랍비가 많은데 왜 당신이 텔아비브에서 여기까지 와야 했느냐?"고 묻자 그는 "애기 부모가 나를 특별히 초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아얄론 고속도로 주변에는 이스라엘답지 않게 단풍이 제법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었다. <작성자 세계기독교박물관 김종식 관장, www.segibak.or.kr 유대절기와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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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식 장면                                                                        할례식 후의 축하 파티, 예루살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