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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천년 전에 사용하던 작은 옥합 >                                                           < 벌집, 벌집을 녹여서 만든 밀랍 >

< www.segibak.or.kr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  마가복음 14장 3절에 보면,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옥합은 여자가 방안에서 깰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병이 아니다.

옥합은 돌로 만든 병이므로 그것을 깨뜨리려면 여자가 큼직한 망치로 때리거나 큰 돌로 내리쳐야 깰 수 있는 용기이다. 만약 옥합을 그렇게 깨뜨리면 그 속에 담긴 비싼 향유는 다 쏟아지고 돌조각만 땅바닥에 남게 될 것이다. 설사 몇 방울 남는다 하더라도 그걸 예수님 머리와 발에 부었다면 돌가루가 버석버석했을 것이다.

옥합(玉盒)은 옥으로 만든 그릇을 말한다. 킹제임스 번역본은 Alabaster jar로 번역하였고, 다른 번역들도 Alabaster box, Alabaster vial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앨러배스터(Alabaster)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설화 석고'라고 되어 있는데, 설화 석고는 덩어리 모양의 석고를 말하는 것이다. 석고는 우리가 아는 대로 팔이나 다리가 부러졌을 때 지지대로 이용하는 광물질 반죽으로서 굳어지면 매우 단단해진다. 이에 비해 옥합은 원석 덩어리를 깎아서 만든 병이므로 무쭐하며, 대리석 병처럼 보인다. 
병의 크기는 다양하겠지만, 마리아가 예수께 들고 나온 옥합은 요한복음의 저자가 눈대중하였을 때 나드 한 근이 들어있는 그릇이었다. 이 한 근을 헬라어 성경 원문에 1 '리트라'로 나와 있다. 이는  12온스 즉  327그램에 해당한다. 소주 병 용량이 360 그램이므로 소주병 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다.   

나드 향유를 옥합에 넣는 이유는 나드 향유 자체가 워낙 고가인데다 휘발성이 강하므로 단단한 병에 넣어 밀봉하지 않으면 히말라야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오는 도중에 증발해 버리거나 용기가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다.
용기를 밀봉하는 방법으로는 2천년 전의 경우 밀랍을 이용하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밀랍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굳어져 매우 단단해지며, 나중에는 옥합과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리므로 안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다소 녹녹하여지므로 뚜껑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옥합 몸통의 상당 부분을 감싸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옥합 밀봉을 뜯어내는 것인데, 성경은 이 과정을 '옥합을 깨뜨리고'라고 표현하였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었다는 시기는 유월절 직전이므로 3월말 또는 4월초에 해당하며, 이 즈음의 예루살렘은 아직 추우므로 밀랍도 단단하게 굳어 있을 시기이다. 
밀랍으로 봉인된 뚜껑을 여는 과정을 킹 제임스 번역본은 'broke'라고 표현하였다(막 14:3). 그러나 헬라어 성경은 '깨뜨리다' 라는 동사를 suntri,bw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영어의 break in pieces, crush, shatter; break (of bones); break open (of bottles)라는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용기를 여는 행위는 break open 또는 open with force인데, '힘을 줘서 열다'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설사 '깨다'라는 단어를 이 부분에서 적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밀랍이 있는 뚜껑 부분을 깨는 행위이지 결코 옥합 자체를 깨뜨리는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    
예수님 시대 전후 팔레스타인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아람어 성경 '페쉬타'도 옥합을 깨뜨렸다고 기록하지 않고 '옥합을 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부은 사건은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들은 모두 옥합을 깨뜨린 것으로 기록하지 않고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마 26:6)", "옥합을 가지고 와서(눅 7:37)",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요 12:3)"로 기록하고 있다. 옥합을 여는 것이 비록 힘드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결코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이 일반적인 과정이 마가복음 저자의 예리한 시선에 포착된 것은 우리에게 은혜가 된다. 연약한 여자가 힘들여 모은 나드를 꺼내려고 뚜껑을 여는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고고학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발굴되는 옥합들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앨러배스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간의 투명성이 있으므로 불빛에 비춰 보면 반대편의 불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원석을 깎아 만든 용기이므로 여행 과정에 사고가 나더라도 향유는 안전하게 보관된다.

신약에서 향유 그릇으로 나오는 옥합은 히브리어로 '파흐(pach)'이다. 구약에서는 '파흐'가 기름병으로 번역된 곳이 있으며, 사울 왕과 예후 왕에게 기름붓는 장면에 나온다(삼상 10:1, 왕하 9:1-3). 이에 비해 과부의 식용 기름을 담는 용기는 크기가 큰 '아수흐(asuch)'라는 다른 종류의 그릇이다(왕하 4:2).
왕에게 기름부은 사건과 직접 비교하는 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르겠으나, 마리아가 '파흐'에 담긴 향기름(향유)을 예수님 머리에 부은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려는 그녀의 예쁜 마음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우리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우리가 만약 '옥합'을 우리 몸과 연결지어 '옥합을 깨뜨립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고행'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과 선교에 열중하다 보면 몸이 피곤해지거나 순교에 이를 수 있는데, 그것은 몸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옥합을 깨뜨립시다'라는 표현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몸은 소중한 것이므로 깨어서도 안 될 일이다.  
대신 우리는 향유 즉 순전한 나드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님도 마리아의 옥합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셨고,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예수님은 마리아가 부은 향유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고, 그 일을 모범 사례로 시몬에게 이야기 해 주셨다.  < www.segibak.or.kr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