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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무, 이스라엘 >                                           < 대장간 풀무,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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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egibak.or.kr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27m나 되는 높은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백성들에게 절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다에서 붙잡혀 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결국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졌다(단 3:23).

국어사전에서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로 풀이되어 있다. 우리 고향에서는 그것을 풍로라고 했으며, 추수한 곡식을 바람에 날리는 기구 즉 풍구도 우리는 풍로라고 불렀다.

성경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가 불에 타고 있고, 그 불에 세 사람이 던져진 셈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모양이다.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큰 화덕이나 용광로에 던져진 것이 분명하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도 여러 번 발견된다. 연기나는 풀무(창15:17), 풀무의 재(출9:10), 쇠풀무(신4:20), 철 풀무(왕상8:51), 풀무는 금을 연단(잠17:3), 고난의 풀무(사48:10), 풀무 가운데 있는 놋(겔22:18), 풀무를 뜨겁게 하기(단3:19), 풀무 아구(단3:26), 풀무에 단련한 주석(계1:15) 등이다. 모두 다 화덕이나 용광로 등으로 번역되어야 할 부분들이다.

시골 대장간에서 우리가 보던 풀무는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풍로, 풍구), 불이 이글거리는 화덕(화로, 가마, 아궁이) 그리고 바람을 화덕으로 옮겨 주는 풍로(바람길) 등이다.

예전의 풀무는 네모난 나무통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속에는 움직이는 칸막이가 있어서 바람을 밀어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부분이 바로 공기 흡입구인데, 풀무 뒤쪽에 붙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흡입구 안쪽에는 작은 커텐이 있으며, 칸막이가 앞으로 움질일 때 커텐은 바람을 따라 열리므로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칸막이가 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커텐은 구멍을 막아 바람이 새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풀무의 생명인 셈이다.

풍로(바람길)는 풀무에서 만들어진 바람을 화덕으로 옮겨 주는 역할을 한다. 이 풍로가 없으면 나무로 만들어진 풀무는 화덕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타버리게 될 것이다. 풍로는 보통 네모난 나무홈통과 흙으로 만든 구멍이 이어져 완성된다. 60년대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던 기계식 소형 풀무는 양철이나 쇠로 만든 파이프 형태의 풍로를 연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지방에서는 그것을 연통이라고 불렀는데, 연통이란 사실 연기를 빨아내는 굴뚝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화덕 또는 용광로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왜 풀무로 불렸을까? 이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1882년 최초로 신약을 번역한 서상륜, 백홍준, 이응찬의 고향 의주에서는 이 부분을 무어라고 불렀는지, 일본에서 성경을 번역한 이수정은 무엇이라고 번역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으로 바뀌면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번역 대상본인 중국어판, 영어판 등에는 어떻게 나와 있는지 등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 풀무라는 단어 자체가 뜻 변화를 하지는 않았는지 짚어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개역한글 이후의 성경들은 풀무를 화덕, 가마, 가마솥, 아궁이, 용광로, 도가니, 풀무불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단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 www.segibak.or.kr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