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람들로부터 ‘쓸개 탄 포도주’를 받았으나 맛만 보시고 마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잠시후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는 사람들이 준 ‘신 포도주’를 받으셨다. 매우 비슷한 단어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이지만, 내용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먼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받은 ‘쓸개 탄 포도주’에는 진통 역할을 하는 마취제가 포함되어 있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후 받은 ‘신 포도주’에는 그것이 들어있지 않았다. 쓸개 탄 포도주가 마가복음에서는 ‘몰약을 탄 포도주’로 나오는데, 몰약에는 분명히 마취제가 포함되어 있다(‘정정숙 전도사의 성서식물’ 몰약편 참조).

몰약과 쓸개는 모두 신 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몰약은 아람어로 Morah이고, 쓸개는 히브리어로 Marrah이다. 따라서 단어가 혼동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더 분명한 것은 시편에 이미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1)”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단어의 혼동이라기 보다는 몰약의 신맛을 쓸개즙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인류가 져야 할 죄짐의 고통을 자원하여 대신 짊어 지신 분이시다. 그래서 진통제를 넣은 포도주를 마시고 자신의 고통을 줄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면 신 포도주로는 왜 목을 축이셨을까? 사실 예수님은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바로 숨을 거두셨다(마 27:50, 막 15:37, 요 19:30). 신 포도주를 받으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준 사람은 유대인들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흉악범에게 마취 성분이 든 술을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예수님이 받으신 쓸개 탄 포도주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해 ‘신 포도주’는 로마 군인들이 평소에 마시던 음료수 포스카(posca)인데, 그것은 신 포도주에 계란과 물을 조금씩 섞어 만든 것이었다. 결국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주는 음료수는 거부하셨고, 이방 군인들이 주는 음료수는 받으신 것이다(눅 23:36). 이것은 앞으로 복음이 어디로 전해져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암시를 주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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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종합적으로 보면, 로마 군인들은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한 후 갈대 (지팡이)에 꿰었고, 그것을 우슬초 줄기로 붙잡아 매어 예수님 입에 넣어 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로마 군인들은 해융(海絨)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예수님께 드렸는데(마 27:48), 해융은 개정판에 보면 해면(海綿)으로 나온다. 이것은 갯솜을 말하며, 영어로는 스펀지(sponge)이다.

해융은 바위밑에 서식하는 해양동물로서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초기에는 식물로 분류되기도 했다. 간혹 수심이 깊은 민물에서도 살지만 주로 지중해, 플로리다, 필리핀 등에 서식한다. 햇볕에 말리면 스펀지처럼 미세한 구멍들이 생겨 물을 흠뻑 머금을 수 있고, 그것을 짜면 물이 주루룩 흐르므로 인조 스펀지가 나오기 전까지는 청소, 목욕, 화장, 심지어 의료용으로도 사용되었다.


해융을 갈대에 꿰었다는 것은 갈대로 만든 지팡이에 꿴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종류의 갈대도 있지만, 대나무 같은 갈대도 자라는데, 그것으로는 지팡이를 흔히 만든다.

로마 군병들은 자기들의 음료수를 예수님께 주었는데, 그때 긴 막대기가 갑자기 필요했다. 이 막대기는 미리 준비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현실적으로 그것은 누군가가 손에 들고 있던 갈대 지팡이일 수 밖에 없다. 요한복음은 이 부분을 우슬초에 매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19:29), 우슬초는 약할 뿐더러 30cm 정도로 자라는 짧은 식물이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로마 군병들은 해융을 갈대 지팡이에 먼저 꿴 후 그것이 흘러 내리지 않도록 주변에 자라는 우슬초 줄기를 잘라 해융을 맨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성서사물  www.segiba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