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1.JPG  
세계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스더서 두루마리.  하나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오지만 모세오경 다음으로 중요하게 취급되기도 하였다.  

 < 성경구절 >
-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에 3:2~6)
-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5~16)


< 소장품 설명 >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스더서는 소가죽에 기록된 두루마리이다. 에스더서는 특히 중세시대 유대인들에게 인기있는 책이었으며, 박물관이 소장한 두루마리도 당시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제작 연대가 500년은 족히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에스더서를 ‘메길라(Megilla)’라고도 부르는데, ‘두루마리’라는 뜻이다. 에스더서가 원래 페르시아의 여러 지방으로 보내진(에 9:26) 두루마리 편지였으므로 그것처럼 만든 것이다. ‘메길라’는 에스더, 예레미야 애가, 아가, 룻기, 전도서 등 모두 다섯 권이지만 그냥 ‘메길라’라고만 말하면 그것은 에스더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초기 탈무드시대(서기 250년까지) 회당에서 낭독된 두루마리는 에스더서 뿐이었기 때문이다. 

< 에스더서 이야기 >
부림절의 핵심은 부림절 저녁과 다음날 아침 회당에서 에스더서를 읽는 것이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읽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 2명 이상을 위하여 기부금을 내는 풍습도 남아 있다. 
에스더서를 읽을 때 구원의 대목은 큰 소리로 읽지만(에 2:5, 8:15, 8:16, 10:3), 하만의 열 아들 이름은 단숨에 읽어 버린다. 열 아들이 한꺼번에 처형당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만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라-아샨(그레거스라고도 한다)이라는 
딱따기를 마구 돌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책상을 치면서 발을 굴려 하만을 야유한다. (하만이라는 나쁜 이름을 지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에스더서는 성경 66권 중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유일한 책이다. 에스더서를 성경에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에스더서의 내용은 멸망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이 극적으로 구출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페르시아에 살던 유대인 숫자가 일천 오백만명 정도였고, 수산성 주변에만도 70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렇다면 규모 면에서 출애굽기를 능가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셈이다. 이 중요한 책에 하나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랍비 알프레드 콜라치는 '유대인들은 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의 외딴 지역들로 보낼 두루마리 편지 형태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중간에 더럽혀지거나 잘못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 되므로 유대인들은 일부러 (에스더서에) 하나님 이름을 넣지 않았다"(14-8 '왜 에스더서에는 하나님 이름이 안 나올까' 중에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해야 한다. 즉 페르시아 전역에 보낼 두루마리 편지는 에스더서 중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굳이 에스더서 전체에 하나님 이름을 넣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페르시아 각 지방에 편지를 보낸 것은 모두 여섯 차례였고, 그 내용들은 왕후 와스디 징벌(1:19), 새 왕후 모집(2:8), 유대인 진멸(3;12), 진멸 취소(8:9), 하만 아들 징벌(9:14), 부림절 규례(9:20)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편지를 바탕으로 해서 살을 붙인 것일텐데 말이다.

그렇다. 에스더서는 그 내용상으로 볼 때 페르시아 각 지방에 보낸 여섯 장의 편지들을 펼쳐 놓고, 후대의 편집자가 중간중간에 내용을 보완하여 완성한 책이다. 그때에 편집자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알마든지 삽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편지에 흐르는 하나님 경외 정신, 굳이 표면에 나타내지 않더라도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분에 대한 신앙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만이 유대민족을 몰살시키려는 계획은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필자는 중학생 때에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모르드개라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는 뚜렷한 이유없이 상관을 존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책임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온 유대 민족을 금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착하고 예쁜 에스더를 잘못될 수도 있는 위험에 빠뜨렸고, 온 민족을 죽음의 공포 속에 몰아 넣은 정신나간 사람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호크마 주석 등 많은 자료들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 3:1)을 아말렉 족속의 후예로 소개하고 있다. 유대인들도 부림절 직전 안식일에는 신명기 25장 17~19절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라는 구절을 낭독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과 아말렉 족속과의 악연은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침범한 데서 비롯되었다(출 17:8).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아말렉을 도말하기로 결심하셨고(출 17:14) 기드온, 사울, 다윗은 각각 아말렉과 전투를 벌여 크게 이겼다. 그리고 시므온 자손은 마지막으로 아말렉을 치고 거기에 거하였다(대상 4: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말렉 후손은 아직도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그 남은 자들을 처분하기 위하여 하만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는데(에 3:4), 그 사건이 바로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하만도 모르드개의 선전포고를 알아 차렸다. 그는 적개심을 느낀 나머지 유대 민족을 멸하기로 결심하였다(에 3:6). 
에스더서는 결코 모르드개와 하만의 단순한 싸움이 기록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과 아말렉 족속 간의 총칼없는 전투를 기록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에스더서는 출애굽기의 완성이 되고 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던 대제사장 예수아는 건축자금이 바닥나자 백성들과 더불어 3일간 금식기도를 하였으며, 마지막날 모르드개가 보낸 열 마리의 낙타에 실린 금과 은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하만과 모르드개의 전투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처음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www.segibak.or.kr 성서사물 중에서>

< 참고 >
2010년의 부림절은 2월 28일이다. 부림절에 대한 내용은 본 홈페이지 '유대절기와 관습' 게시판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