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성경과 전승, 그리고 성지 유적과 당시의 관습을 근거로 세계기독교박물관 김종식 관장이 직접 쓴 단편소설입니다. 난해한 당시의 사회상과 복잡하게 얽힌 초대교회 인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설 빌레몬서>

터어키 남서부에서 태어난 헬라 소년 빌레몬은 병아리처럼 밥 한끼 먹고 나면 하늘 한 번 쳐다보는 그런 아이였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펼쳐진 라오디게아 들판도 그에게는 답답한 세상일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북쪽에 있는 파묵칼레로 달려갔다. 높은 산에 올라가 내려다 보는 세상은 더 넓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의 하얀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도 매력적이었다.

그래봐야 빌레몬이 파묵칼레까지 갈 수 있는 날은 1년에 고작 두 세 번밖에 안 되었다. 20리나 되는 거리인데다 나이를 먹으면서 할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빌레몬은 파묵칼레에서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했다. 어떤 때는 멀리서 온 고귀한 손님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복장과 태도가 라오디게아나 히에라볼리(골4:13) 사람들 보다 훨씬 세련되고 매력적이었다. 빌레몬은 그들이 온천욕을 하는 동안 마부 몰래 수레로 달려가 바퀴를 쓰다덤어 보곤 하였다.
그렇다고 빌레몬의 집이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라오디게아 자체가 부자 도시인데다(계3:17) 아버지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모(羊毛)를 싼 값에 사 모은 후 옷감짜는 사람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돈을 벌었던 것이다. 친구 아버지들도 은행에 다니거나 무역을 하였고, 어떤 사람은 안약(眼藥,계3:18)이나 고약(膏藥)을 만들어 돈을 벌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빌레몬은 예쁜 아내와 행복하게 지냈으나 그놈의 물 때문에 가끔 아내와 다투었다. 땀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물 한 모금과 발 씻을 물을 요구했지만, 아내의 준비는 늘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묵칼레에서 수로를 따라 흘러 온 온천물은 항상 미지근하였고, 호나즈 산에서 골로새를 거쳐 온 골짜기 물도 뜨거운 태양아래 40리를 흐르는 동안 미지근하게 데워져 버렸기 때문이다(계3:15).

빌레몬은 아내 압비아(몬1:2)에게 제의하였다. “여보, 우리 골로새로 이사 갑시다. 골로새의 도시 기능이 점차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로 넘어 오고 있으니 장래적으로 양모업(羊毛業)은 양모 생산이 늘어 날 골로새가 나을 것이오. 그리고 골로새에는 시원한 물도 있지 않소. 우리 아들 아킵보(몬1:2)를 라오디게아 의대(醫大)에 보내려면 입시학원이 마음에 걸리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그건 차후에 검토해 봅시다.”

빌레몬 부부는 골로새로 이사한 것을 늘 만족스럽게 생각하였다. 해발 2,528m나 되는 호나즈산맥이 골로새를 감싸 주었고, 서쪽으로 흐르는 멘데레스강의 지류 Aksu강도 Lycus계곡에 자리잡은 그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골로새는 큰 도시여서 소아시아에서 수리아(시리아)로 가는 여행객들의 교통 요충지였다는 것도 빌레몬에게는 일종의 자부심이었다.
그는 우선 사업 영역부터 확장시켰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양모 수집상도 하면서 목장업에도 손을 댄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오네시모라는 젊은 노예도 하나 사 왔다(몬1:16, 골4:9). 빌레몬은 양모를 팔아 이윤을 챙기는 것보다 양모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 보람이었지만, 여전히 도매업은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빌레몬은 수시로 라오디게아로 나가 양모를 팔거나, 주거래상들을 다독거려 주었다. 그날도 일찌감치 라오디게아로 나가 물건을 내다 팔고, 모처럼 파묵칼레로 올라가 온천욕을 즐긴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 따라 골로새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게 느껴졌고, 나귀등에 탄 자신이 개선장군처럼 느껴졌다. 날이 어둑해져 왔지만 그는 조금도 서둘지 않았다. 오히려 강줄기에서 솔솔 이는 안개 맛을 즐기면서 천천히 걷고 싶었다.
이윽고 대문 앞에 마중나와 기다리던 아내가 그를 맞이하였고, 방으로 들어선 빌레몬은 자그마한 금괴를 아내에게 보여 준 후 장롱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금붙이는 빌레몬의 보람이었다.

빌레몬은 꽤 여러 개의 금괴를 장롱속에서 꺼내 들었다. 새로운 사업도 구상할 겸 견문을 넓히기 위해 500리가 넘는 소아시아 최대의 상업도시 에베소로 나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값진 보석을 하나 사 주고 싶었다. 골로새나 라오디게아보다 에베소는 규모면에서나 화려함에서 비길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베소에 도착한 빌레몬은 우선 노천강당에서 항구쪽으로 쭉 뻗은 대로를 따라 걸어 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골로새와는 딴판이었다. 산밑에 있는 저자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행중인 그에게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은 역시 노천강당과 저자거리 사이에 있는 홍등가(紅燈街)였다. 대로변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지날 수 있고, 자기를 알아 보는 사람도 없는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골목으로 들어설 수 있는 용기는 하루내내 충분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그는 우연히 셀서스도서관(두란노서원)으로 들어가 바울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행19:9). 자그마한 체구의 바울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일단 자신에 찬 연설에는 힘이 붙어 있었다. 연설을 끝낸 바울은 곧 바로 빌레몬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형제여, 평안하신가요?”

빌레몬은 어느새 바울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향에서 온 에바브라라는 사람도 자기처럼 복음을 들은 일과, 골로새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골1:7). 그러나 빌레몬은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에베소에 머물면서 바울의 일을 도왔다(몬1:17).
이제 빌레몬에게는 예수가 새로운 사업이요 희망이었다. 그는 남아 있는 금붙이들을 팔아 언덕위에 세워지고 있는 에베소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드렸다. 그 후 에베소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 사도 요한도 만나 보았다. 그러나,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모시고 왔다는 성모 마리아(요19:27)에 대해서는 그가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뒷산 깊숙이 지어진 비밀 숙소로 들어 가셨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그 즈음 바울은 에베소에서 은장색공(銀匠色工)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하여(행19::24) 에베소교회를 요한에게 맡기고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다(행20::1). 빌레몬도 그제서야 자기 가족이 고향에 남아 있음을 깨닫고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골로새로 되돌아왔다. 몇 달만에 집으로 돌아 온 그는 우선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장롱 속의 금괴를 훔쳐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몬1:18). 그는 몹시 불쾌했으나, 바울로부터 전해 들은 복음을 가족에게 전하고 주일마다 에바브라의 골로새교회에 출석하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한편, 보석을 훔친 오네시모는 터어키에서 3,000km나 떨어진 로마로 잠입하는데 성공하였다(골4:9). 당시의 로마는 탈출노예들의 온상이었기 때문에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주인 집에서 훔친 금괴도 노예신분을 지우고 로마 시민권을 사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이제 남은 금괴 2개는 그의 로마 정착에 활용될 터였다.
그는 우선 화려한 로마거리를 구경하기로 마음 먹고 시내로 들어 섰다. 그러나 어쩌랴. 그의 어설픈 행동거지는 금방 들통이 나고,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금괴는 오히려 그를 감옥으로 가게 만들었다(몬1:10). 그놈의 금덩어리, 나무밑에 묻어 두고 오는 건데...

다행히 그는 로마 감옥에서 바울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골4:9). 바울은 자기가 다메섹 길에서 만났다는 예수 이야기를 전해 주었지만(행9:3), 노예로 살아오던 오네시모로서는 그게 사람 이야기인지, 아니면 신(神)에 대한 이야기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 면회를 왔고, 함께 감옥에 있던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는 사람들도 바울을 크게 공경하였다(골4:10).

하루는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투옥되었는데(골4:12),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났던 그를 금방 알아 보았다. 에바브라는 자기가 섬기던 골로새교회 소식을 바울에게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빌레몬이 에베소에서 돌아와 자기 교회 교인이 된 일과, 그의 노예가 금괴를 훔쳐 도망쳤으나 빌레몬은 잘 극복하였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몬1:1).
구석에 납짝 엎드려 쥐죽은 듯이 듣고 있던 오네시모는 이미 얼굴이 파랗게 질린 상태였다. “세상이 이렇게 좁다니... 그리고 이 바울이라는 사람은 내 목숨을 움켜 쥔 빌레몬 주인보다 더 큰 선생이구나...
보고를 마친 에바브라가 잠시 자리를 떠자, 오네시모는 바울선생을 붙들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빌레몬의 노예인 것과 금괴를 훔쳐 도망친 사실, 그리고 로마에서 붙잡혀 감옥에 오게 된 일들을 모두 말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자기가 살 수 있는지 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바울은 눈물 범벅이 된 오네시모를 일으켜 앉힌 후 다시 한 번 예수의 복음과 그의 사랑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날 오네시모는 무릎을 꿇고 예수의 복음을 받아 들였다.

하루는 바울이 골로새교회로 보내는 편지(골로새서)를 쓰다가 오네시모를 쳐다 보면서 말했다. “이 편지에 네가 로마 감옥에 있다는 이야기를 쓰겠다. 그리고 1주일 후면 네가 출옥하여 두기고라는 사람과 함께 골로새로 갈 것이라는 말도 쓰겠다(골4:7-9)”.
오네시모는 펄쩍 뛰면서 그런 내용을 편지에 쓰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차근하게 타일렀다. “네 천성은 착한 사람이야. 내가 노예였더라도 너처럼 도망쳤을지 몰라. 그리고 네가 출옥하면 나를 도울 일이 많아. 그렇지만 네 주인 빌레몬의 허락 없이는 내가 아무 일도 시킬 수가 없어(몬1:14). 그러니 내가 네 주인에게 별도로 써 주는 편지(빌레몬서)를 가지고 가서 용서를 받고 돌아 오게. 그도 이제 예수믿는 형제가 되었으니 내 편지를 읽고 틀림없이 너를 용서해 줄 것이야. 그리고 만의 하나 훔친 물건 값을 요구하면 내가 변상할 것이니 걱정 말고 다녀 오게(몬1:18).”

두기고와 함께 로마를 떠나 골로새로 가는 오네시모의 다리는 후들거렸다(골4:7-9). 그러나 그는 바울이 써 준 편지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나는 바울에게 은혜를 갚아야 해. 그러려면 바울의 말씀처럼 주인의 용서를 받아야 하잖아. 잘 될 거야.’ 오네시모는 골로새로 오는 길에서 내내 이 생각만 하였다.

골로새로 돌아 온 오네시모는 동행자 두기고의 도움을 받아 주인 빌레몬 앞에 섰다. 빌레몬은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두기고가 내민 바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갇힌 중에서 내가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몬1:10)”로 시작된 바울의 편지를 다 읽은 주인은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형제여, 이제 그대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감히 주인의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서 있던 오네시모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따뜻한 저 목소리는 분명 두기고에게 하는 말일거야. 그러나 용기를 내어 고개를 쳐든 오네시모는 자기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 주인의 모습이 비쳤다. “바울에게로 돌아가 그를 도우시오. 그리고 내 안부도 전해 주시오”(몬1:13). 바울의 편지는 정말 위력이 컸다. 오네시모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네시모는 자유의 몸이 되어 로마로 돌아왔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바울 섬기는 일에 전념하였다(몬1:13). 그는 베드로가 이룩해 놓은 로마교회를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네시모는 말년에 더 큰 사명을 받았다. 에베소로 건너가 디모데를 이어 에베소 교회들의 감독이 된 것이다. 거기서도 그의 열심은 특출하였고, 터어키에까지 손을 뻗은 네로의 박해도 한동안 그의 활동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마침내 네로의 군중들은 오네시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의 가족들을 돌로 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네시모도 가족의 돌무더기에 합류함으로서 이 땅에서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이 슬픈 소식은 곧 바로 골로새에서 감독의 일을 보던 그의 옛 주인 빌레몬에게 전해졌으며(몬1:1), 머지 않아 빌레몬도 오네시모와 같은 순교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이 위대한 순교자들의 발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아 보기 어렵다. 터어키 남서부 골로새 유적지에서도 몇 개의 대리석 기둥 잔해와 ‘골로새’라고 쓴 손바닥 만한 간판 하나가 매달려 있을 뿐이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