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환도뼈’가 여덟 번 나온다. 두 번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고(창 24:2~9), 한 번은 요셉이 야곱에게 ‘애굽에 장사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이다(창 47:29). 그리고 나머지 다섯 번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에 나온다(창 32:25~32).

특히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는 장면에서 필자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떨칠 수 없다.

1)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고, 야곱의 환도뼈는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다. 위골(違骨)이란 탈골(奪骨)을 말하는데, 왜 사람들은 환도뼈가 ‘부러졌다’고 말할까?

2) 하나님은 야곱을 ‘치지’ 않고, ‘나가’하셨다. 히브리어 ‘나가’는 ‘(손이) 닿다, 이르다’일 뿐인데, 왜 사람들은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고 말할까?

3) 마지막으로,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환도뼈'가 히브리어로는 ‘야레크’와 ‘카프’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즉 '야곱의(야레크) 환도뼈를(카프)'이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야레크는 넓적다리 또는 환도뼈를 말한다. 그리고 카프는 ‘속이 빈 것, 우묵한 곳’을 말한다.
하나님이 야곱을 친 곳은 ‘야레크(환도뼈)’가 아니라 ‘카프’였고, 또한 ‘카프’가 위골되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환도뼈’를 쳤다고 말할까?


<위골되었더라>

위골(違骨)은 뼈마디가 어그러진 현상을 말한다. 한자 위(違)는 ‘어길 위’로서 뼈마디가 빠졌거나 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졌다’라고 말한다. (물론 잠언 25장 19절에 나오는 ‘위골된 발’은 여기서 말하는 위골과 히브리어 자체가 다르다.)

다음의 두 글을 보자.
-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 하나님께 순복, 은총을 받았다 - 000의 ‘환도뼈를 친 뜻’ 중에서
- 환도뼈가 '부러져' 몸에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 000 목사의 ‘오늘의 가정예배’ 중에서

‘위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카’이다. 이 단어는 ‘탈골되다, 삐다, 뜯기다, 찢어지다. 뜯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어 성경도 부러졌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 KJV : the hollow of Jacob's thigh was 'out of joint'(접합을 벗어났다)
- NIV : so that his hip was 'wrenched'(삐다)
- NASB : the socket of Jacob's thigh was 'dislocated'(관절을 삐다)

한글 성경 번역의 모태 역할을 한 중국어 성경도 ‘초우’ 즉 ‘고장났다, 어긋났다’로 되어 있을 뿐 부러졌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졌다’라고 말한다. 아마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위골’이라는 단어가 어려워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최신 번역들은 다쳤다 또는 뼈가 어긋났다로 번역하고 있다.

환도뼈가 부러졌다는 오해는 ‘치매’라는 단어와 '절었더라'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단단한 뼈는 세게 치면 부러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넓적다리 뼈는 사람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인데, 그게 부러질 정도로 세게 내리쳤다면 아마 야곱은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야곱의 환도뼈는 쳤기 때문에 위골된 것이 아니다. 성경을 조금만 유의해서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야곱의 환도뼈는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다(창 32:25). 많은 주석들은 이 '씨름'을 육체적인 씨름으로 풀이하기 보다는 영적인 씨름 즉, '열정적인 기도'로 풀이하고 있다.


<치매>

개역한글 성경에는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 위골되었더라”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가’이고, ‘(손이) 닿다, 이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라고 말한다.

-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시고 환도뼈를 '치신' 사건입니다 - 000의 ‘창세기 강의안’ 중에서
- 결국 날이 새려 할 즈음에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침으로서' 씨름은 끝이 납니다 - 000 목사의 ‘밤새도록 씨름한 야곱’ 중에서

영어 성경은 히브리 원어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KJV, NIV, NASB 모두 ‘he touched...'로 표현하고 있다. 즉 ‘손을 대다, 손으로 쓰다듬다, 만지다, 닿다’ 정도의 표시이다.

중국어 성경도 ‘모(摸)’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살짝 만지다’는 정도의 감각이다. 그리고 70인역도 '만지다'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학자에 따라 또는 성경 번역본에 따라 '치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된 곳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력한 성경과 자료들은 '만지다'를 택하고 있다. 오히려 이 부분을 이사야 입술에 숯불을 갖다 댄 수준의 'magical touch'로 격상시키는 학자들도 있다.

하나님은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셨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다급하여 야곱의 환도뼈를 치는 반칙을 하신 것일까?
다음에 나오는 '환도뼈' 부분에서 여기에 대한 설명이 추가될 것이다.


<환도뼈>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환도뼈 부분에 쓰인 히브리어는 ‘카프’이며, ‘속이 빈 것, 공허한 것, 구부러진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어 성경들도 이와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다.
- KJV : ‘hollow of his thigh’(넓적다리/가랑이의 움푹 들어간 곳/속이 텅 빈 곳/골짜기)
- NIV : ‘socket of Jacob's hip’(야곱 엉덩이의 우묵한 곳)
- NASB : ‘socket of his thigh’(넓적다리/가랑이의 우묵한 곳)

이에 비해 한글 성경은 모두 뼈 종류로 번역하고 있고, 중국어 성경도 ‘따 투이 와(대퇴부)’로 번역되어 있다.
- 개역한글 : ‘환도뼈’를 치매
- 표준새번역 : ‘엉덩이뼈’를 쳤다
- 개역개정 : ‘허벅지 관절’을 치매

우리는 환도뼈에 대한 몇 가지 해설들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몇몇 자료들은 ‘카프’와 ‘야레크’를 구분하여 설명하지 않고 있다)  

- 환도뼈(카프)는 문자적으로 '엉덩이의 우묵한 구멍', 곧 넓적다리 부분의 움푹 패인 곳을 가리킨다. 원래 환도뼈는 둔부 아래쪽에 있는 좌골(坐骨)로 엉덩이의 골반을 형성하는 좌우 한 쌍의 뼈를 뜻한다(창 24:2) - 호크마 주석, 창 32:25절 주석 중에서

- 환도뼈(huckle bone)는 사람의 둔부 아래쪽에 있으며 엉덩이의 골반을 이루는 좌우 한 쌍의 뼈 즉, 좌골(座骨)을 가리킨다. - BBC 성서용어 및 상식, 환도뼈 중에서

- 환도뼈는 척추와 다리뼈를 연결해주는 엉덩이 부분에 있는 뼈입니다. 음부 아래쪽에 있는 엉덩이 곁의 골반을 이루는 좌우 한 쌍의 뼈로, 엄숙한 맹세를 할 때에 이곳에 손을 댑니다 - dacafo의 ‘환도뼈란 무엇인가요’ 중에서

- ‘야레크’는 신체중 다리의 윗부분을 가리킨다. 넙적다리 근처에 생식기가 있기 때문에 생식기에 대한 완곡적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 아가페 성서사전, ‘넙적다리(야레크)’ 중에서

- 카프 야렠이 대퇴부 관절이든, 음낭을 완곡(euphemistic)하게 이른 말이든 간에, 우리가 히브리어 원문을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야곱은 넙적다리뼈 쪽  생식기 부근 어떤 곳에 상처를 입었다' 정도일 것입니다. - www.koisra.com, kaitz(이영길) 검색어 환도뼈 중에서

- 어떤 유대인 도살자는 환도뼈 힘줄을 잘라내고 뒷다리와 엉덩이 부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코셔 정육점에서는 이 부위를 아예 다루지 않고 일반 시장으로 반출해 버린다 - 김종식/김희영 번역, The Jewish Book of Why 중에서

여기에서, 환도뼈로 번역된 ‘카프’는 넓적다리 중에서도 생식기가 가까운 쪽 즉 사타구니 부근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은 우묵한 곳으로서 다음 성경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즉, 요셉의 해몽대로 "술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바로의 손에 (술잔을) 받들어" 드렸다는 부분이다. 여기에 나오는 '손'은 히브리어로 '카프'이며, 손바닥을 의미한다. 술잔을 잡는 손바닥이 우묵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볼 때 야곱이 몸을 구부려 천사와 맞붙어 씨름을 하던 중이었든지, 아니면 야곱이 꿇어 앉아 기도를 하던 중이었든지 간에 그 우묵한 부분은 물리적인 힘을 가하여 손으로 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팔을 깊숙이 내밀어야 닿는 부분인데다, 상대방이 팔을 내뻗는 순간 누구나 방어력이 발동되는 급소이므로 위골될 정도로 친다는 것은 무리해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야곱이 가만히 있었다 치더라도 사타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손을 넣어 칠 수 있는 공간도 없다. 손이 다른 다리에 닿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거친 스포츠라도 그곳을 치는 행위는 반칙에 속한다. 우리 하나님은 야곱을 이기기 위해 과연 그곳을 치실 정도로 무례하신 분이신까.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야레크(환도뼈) 사이 우묵한 카프(생식기)에 손을 대신 것이고, 야곱의 환도뼈는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골반이 벌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야곱은 나중에 '환도뼈로 인하여' 걸을 때에 절게 되었다(창 32:31).


<완곡어법>

성경에는 본래의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난해하거나 거친 단어를 부드럽게 표현한 곳이 자주 나온다. 이러한 표현 방법을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http://www.koisra.com/, 히브리어학, 남자는 벽에 오줌 싸는 자, 박대진편 인용)

대표적인 단어중의 하나는 사무엘상 25장 22절에 나오는 '남자'라는 단어로서 '마슈틴 베키르' 즉 '벽에 오줌 싸는 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 말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마온에 가 있을 때 부자 나발에게 음식을 좀 달라고 소년 열 명을 보내었으나 거절 당하자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것 중 한 남자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는 장면에 나온다.
당시 몹시 화가 난 다윗은 적어도 '놈' 이상의 표현은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 말을 사실대로 적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였다.

성경은 또한 죽었다는 말을 '조상에게로 돌아갔다'로 쓰거나, 사울이 소변을 보거나 또는 낮잠 자는 장면을 '발을 가리웠다'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표현들은 비록 A라는 사람이 '아'라고 말하지만 B라는 사람이 '아'로 알아듣지 않고 본뜻을 이해하게 되므로 유대인들 사이에는 의사전달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떤 거북한 장면을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표현법이다.

창세기 24장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하란으로 보내기 직전 "네 손을 내 환도뼈(야레크) 밑에 넣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그 말대로 하지 않고 분명히 아브라함의 생식기 밑에 손을 넣었을 것이다.
엘리에셀이 취한 행동은 근래까지 중동에서 사용되어 오던 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중요한 약속을 할 때 그렇게 하곤 하였다.

창세기 32장 25절에 나오는 '야곱의 환도뼈'는 엘리에셀이 그 밑에 손을 넣었던 '야레크'보다 더 구체적으로 야레크(환도뼈)와 카프(우묵한 곳)가 함께 사용되었다. 이 부분을 만약 성경에서 '야곱의 불알을 만지매'로 기록했거나 이보다 더 직접적인 단어로 썼다면, 위에 언급한 박대진의 글에서처럼 경전에 적절한 표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환도뼈에 손을 대매'라고 말하면 모든 유대인이 알아 듣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표현을 쓸 필요도 없고, 만약 그렇게 했다면 비난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결론 - 중요합니다>

필자는 인체에 대해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다음 몇 줄을 더 쓰고 싶다. 앞으로 더 유능한 학자들이 더 깊게 연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왜 하나님은 하필 야곱이 가장 곤경스러운 시기에 다가오셨을까?
왜 하나님은 하필 야곱의 환도뼈 사이(생식기)를 만지셨을까?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는 산통을 통하여 무엇을 낳았을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반복되었다(창 26:4).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 당대에는 민족이 이루어질 징조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산이 일반적이던 그 시대에 그들은 그저 간신히 대를 이어 나갈 정도의 빈약한 번식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하나님은 환도뼈 사건을 통하여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으며, 나중에는 열 두 아들을 통하여 열 두 지파까지 세우셨다.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창세기 50장 중 25장부터 끝까지 야곱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점도 유의해 볼 일이다.
남의 이름을 고쳐 준다는 것은 중근동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주권을 간섭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오기 전 그에게 새로운 이름과 지위를 주시면서 그 야곱, 즉 이스라엘의 주권에 더욱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면서 마침내 민족을 세우신 것이다.

다음은 아브라함, 이삭을 이은 야곱이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조상임을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 국민-민족-족속 :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창 25:23)
-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1)
- 유대민족이 2천년 동안 떠돌이 생활 하다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결론적으로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환도뼈 사건은 천사가 야곱과 씨름하고 축복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낳으신 사건으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져야 할 것이다.
마치 여자가 산통을 겪은 후에 아기를 낳듯 야곱도 환도뼈(생식기)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리고 마음이 깨어지는 광야학교를 지나면서 명실상부하게 이스라엘 조상으로 세움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지점을 turning point라고 이야기한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