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부활절이었다. 경북 청도 이서교회에서 부활절 대예배를 드린 후 오후 3시에는 충북 제천에 가서 연합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울산 극동방송을 방문하였고, 그날 밤에 서울로 돌아왔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 다니면서 느낀 소감은 전국적으로 '부활절 연등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말이 곡해될 소지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본 전국에는 부활절 연등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불교 축제를 폄하할 의사는 없다. 내가 말 하려고 하는 점은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 행사는 교회와 체육관에 꼭꼭 갇혀 있고, 과거에 보지 못했던 불교 행사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데도 교회들이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과거 여의도에서 열리던 대규모 새벽 연합예배는 서울시청 앞 광장 연합예배로 축소되었다. 
성탄절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기독교 가정마다 내걸던 별등은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던 크리스마스 카드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는가?

이제 성경 찬송을 들고 교회로 걸어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회 종소리도 사라져 버렸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교회에만 있고, 직장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굳이 새로운 기독교문화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와 전통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복구하기만 해도 세계 최고의 기독교문화 국가가 되는 것이다.

폴란드에서 본 어느 봄날의 주일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최고의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같은 방향을 향하여 걸어가는 풍경이었다. 아빠는 신랑같은 정장을 하였고, 엄마들은 한결같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소년은 나비 넥타이를 하였고, 소녀는 치마를 나폴거리면서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날 거리 풍경이 하도 신기하여 외국인 교회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따라 가 보았다. 그날이 바로 부활절이었고, 사람들이 모여 든 곳은 교회였다. 교회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나중에 온 사람들은 마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한국의 시청 앞과 교회 건물에서 번쩍거리는 전시용 성탄절 전기불이 아니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사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 교인들이 초파일에 돈을 주고 하나씩 사서 단다는 연등은 확실히 정성이 있어 보인다. 

유대인들은 하누카 절기(수전절)가 되면 가정마다 여덟 촛대를 켜서 8일 동안 밤새도록 창 밖이나 베란다 밖에 둔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방인들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한 수전절의 기쁨을 더할 수 있고, 동시에 '우리는 선택받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어떤 교회가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
즉, 부활절 아침에 온 교인들이 꽃 한 송이씩을 가져와 예배 직전에 줄을 지어 강단 꽃바구니에 꽂은 후 자리로 돌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정성이 깃들인 그날 예배는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고, 다양한 꽃들을 바라보는 성도들도 즐거울 것이다. 한 달 후 어버이 주일에 받을 꽃을 내가 먼저 드린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후 지역별 연합예배 후에는 그대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 아니라 짧은 거리일지라도 전도행렬을 지어 어느 교회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기념품을 받고 해산하면 어떨까?

이러한 행사들이 하루 아침에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발전시켜 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세계기독교박물관은 건전한 기독교문화를 세우기 위하여 앞으로 꾸준히 연구하고, 동시에 다양한 캠페인도 전개해 나갈 것이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