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단편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 중간쯤에 보면,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나 봅니다. 예수꾼들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시여! 나의 죄를 구하소서, 아맹…, 하지 않소? (중략) 그런 무식한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나를…. 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我免)'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라는 글이 나온다.

이 글은 등장 인물들끼리 나눈 대화 부분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되던 1921년 당시의 사회상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Jewish book of Why'는 '아멘'이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탈무드(Shabbat 119b)에는 ‘아멘’이 히브리어로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왕이시다’라는 뜻의 ‘엘 멜렉 네에만(El Melech Ne'eman)’이라는 세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멘’은 민수기 5장 22절에 처음으로 나온다. 회중은 기도에 반응할 때(시 89:52)나 ‘정말로’ 또는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신 27장)’라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그후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축복기도를 하면 회중은 보통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라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는 이 말 대신 ‘아멘’이라는 말이 더욱 일반화 되었다(Taanit 16).

'아멘'이라는 말은 참으로 편리하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은 '아멘' 소리에 기도가 끝난 줄 알게 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사람도 잠깐 졸다가 '아멘' 소리에 놀라서 잠을 깰 수 있으니 그렇다. 사실 이러한 편리함은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대화 수준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들끼리 대화 중에도 간혹 '아멘'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상대방의 주장이 아주 적절하여 동의를 표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것은 기도가 끝날 때 '나도 그 기도에 동의하고 동참하니 우리 기도를 들어 주소서'라는 의미로 우리가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아멘'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설교나 기도 시간에 회중은 '옳소'라고 반응하였을까, 아니면 성전시대처럼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라고 반응하였을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그런데, 실제로 답답한 것은 그게 아니라 한국에서 진정한 설교, 진정한 교인, 진정한 교회를 찾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왜 우리는 인터넷에서 교회를 향하여 독설을 퍼붓는 '안티 크리스챤'들의 글을 읽어야 하며, 방송에서 교회를 비방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참으로 소설 '상록수'시대가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새벽 종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아침이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