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26일 새벽 5시, 예루살렘에 눈이 쌓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차를 내몰았다. 성지순례 책을 쓰기 위해 사진찍는 일에 미쳐 있던 필자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샤론평야 기온이 11도나 되는 시간에, 불과 50분 거리 예루살렘에 눈이 쌓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

헤르젤리야를 출발한지 30분, 엠마오가 보이면서 바깥 기온은 섭씨 2도로 떨어졌고 길가에 흰 눈도 보이기 시작했다. 기럇여아림에 이르자 천지는 하얗게 변했고, 고속도로마저 얼어 붙어 2단 기어로 간신히 800미터 고지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감람산에서 내려다 본 예루살렘은 장관이었다. 30센티미터나 쌓인 눈은 예루살렘을 환홀한 도시로 만들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돌로 만든 황금도시가 아니었다. 성전산도 하얗고, 성벽도 하얗고, 온 도시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로 찌그러 든 유대인 얼굴도 오늘은 환하게 펴져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인 필자에게 먼저 인사를 건낼 정도로 명랑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도 눈뭉치를 던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오늘만큼은 총질을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감람산에 홀로 서서 하염없이 예루살렘성을 내려다 보는데, 바로 눈 앞 기드론골짜기에 무지개가 뜨고 있었다. 이쪽 뿌리는 메시야가 재림할 때 열린다는 황금문에 걸쳐졌고, 저쪽 가지는 스코푸스산 히브리대학 캠퍼스로 뻗어 있었다.
급히 카메라 샷터를 눌러댔다. 제발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좋은 징조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화합되고, 이라크 전쟁이 끝나는 평화의 메시지이기를 기대했다.

감람산 정상에서 눈물교회 입구에 다다르자, 아랫쪽 돌담길에서 여자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한국말이었고, 매우 여유있는 대화였다. 이스라엘에서 이처럼 여유롭게 대화하는 한국인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담 뒤로 돌아가 유대인 공동묘지에 몸을 숨겼다. 그들의 대화를 깨지 않으려는 작은 배려였지만, 필자는 곧 남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예루살렘에 사시는 딱 두 분의 한국 수녀님들이 돌담길 눈을 밟으며 사투리 섞인 말로 나누는 그 달콤한 수다를 누가 감히 깰 수 있단 말인가.

겟세마네동산에 이르자 수령 2000년 되었다는 올리브나무들도 흰 눈옷을 입고 있었다. 50년만에 최고로 많이 내렸다는 눈도 올리브나무를 즐거워하는 듯했다.

조용한 동산 구석, 바위가 있는 곳에 쭈구려 앉아 찬 눈 한 움큼을 입에 넣어 보았다. 수녀님들처럼 여유로와지고 싶었다. 순간, 가슴이 쿵덕거렸고 오만 가지 사건과 감사, 후회와 결심이 머리 속을 교차하였다. 그리고 입안의 눈은 이내 뜨거운 눈물로 바뀌어 차가운 카메라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