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 아브라함은 노망을 해서 아들 장가 보낼 생각을 미처 못 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삭 본인은 왜 장가 가겠다는 몸부림 한 번 치지 않고 40살 노총각이 되었을까? 왜 부모한테 장가 가겠다는 떼도 한 번 안 썼을까? 그리고 장가 가는 날짜도 본인 의사와 관계없었고, 색시도 아브라함이 데리고 오는 대로 맞이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성경은 그들의 속마음을 한 마디도 기록해 두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에 대신 적어 본다.

1) 사라
도대체 저 영감탱이는 아들 장가 보낼 생각을 안하네. 저 자식도 도대체 결혼 이야기는 씨알이 안 먹히네. 무릎에 아들 하나 두려고 종년을 첩으로 주었다가 개망신을 당했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 낳아 내 나이 127살이 되었는데 손자 하나 없으니 … 

2) 엘리에셀
주인 영감님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 애들이 버글버글한 집도 20살이면 장가 보내는데 외아들을 40살 노총각으로 두다니 … 안주인 죽으면 홀애비 셋만 남게 되는데 부끄러워서 살 수 있겠나. 안주인도 아들에 관한한 치매가 걸린거야. 그런데, 아들 주인은 또 어찌된거야?. 불구인가?

3) 이삭
솔직이 말하면 빨리 장가 가고 싶다. 아버지 돌아 가시면 내일이라도 갈거다. 널린 게 처녀들이고, 아랫 동네에 예쁜 처녀도 있던데 …

4) 아브라함
그랬지. 75살 때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하시더니 100살에 저놈을 낳았지. 그랄에서 떠나가 버린 하갈과 내 아들 이스마엘, 잘 있겠지. 할망구 죽기 전에 저놈을 장가 보내고 싶지만, 더 기다려야 해.

 

결국 문제는 아브라함에게 있는 것 같다. 그렇다.

그러나, 사라가 죽음을 앞두고 며느리 타령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이삭도 결혼 청구를 하지 않은 것은 뭔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자기의 깊은 뜻을 그들에게 전했던 것 같다. 아브라함의 그 깊은 뜻은 무엇일까?

 

아브라함은 결코 독단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하였고, 하갈을 내쫓을 때에도 사라에게 일을 위임하였다. 조카 롯과 갈라질 때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했고, 막벨라 무덤을 구입할 때도 상대방의 요구를 다 들어 주었다.

다만, 아브라함은 독단적인 때가 있었다. 이삭을 바칠 때였다. 사라와는 물론이고 당사자 이삭과도 상의하지 않았다. 그건 하나님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이삭을 결혼시키는 일도 아브라함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단적으로 결정하였다. 다만, 이삭을 바칠 때와는 달리 가족의 협조를 구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창 12:2)”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 일을 꼭 이루어 드려야 했다. 여기서 ‘민족(고이גוי)’은 순수혈통을 의미하는데, 고이’는 ‘게바גוה’ 즉 몸(body)과 동형에서 유래된 말이다. 아브라함은 같은 혈통에서 며느리를 맞아야 ‘민족’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셈이다. 아브라함은 늘 이점을 유의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우상의 소굴 갈대아 우르에 있는 처녀를 데리고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연히 하란에 있는 친족으로 범위가 좁아졌고, 아버지 데라의 후손은 너무나 빤하여 처녀가 보이지 않았다. 새로 태어날 여자 아이를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조카 롯에게 두 딸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상한 길로 가 버렸다(창 19:32).

 

그러던 어느날,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고 돌아온 후에 기쁜 소식을 들었다. 조카 브두엘이 리브가라는 딸을 낳았다는 것이다(창 22:23). 이 내용은 이삭 번제사건과 사라 사망사건 사이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대충 읽고 넘어갔지만, 아브라함은 이런 소식을 들으려고 귀를 열고 있었고, 드디어 그 소식을 들은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이삭은 리브가가 성년이 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노종 엘리에셀을 보내어 리브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조카 브두엘과 사돈맺기를 사전에 약속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버지 데라의 집에서 며느리를 맞으려고(창 24:38) 기다렸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은 실로 인내의 사람이었고, 이삭은 진짜 순종의 사람이었다.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기독교 자료 www.segiba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