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한된 떡과 물고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두 번 행하셨다. 그 지역들은 복음서에 따라 달리 나오므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천명을 먹이신 곳은 벳새다로서 유대인 거주지역이라는데 큰 이견들이 없다. 그리고 사천명을 먹이신 곳은 호수 동편의 어느 지역으로 벳새다에서 멀지 않은 어느 이방인 지역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오천 명이나 사천 명은 현실적인 숫자이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 지역인 벳새다에서 행하신 오병이어 사건은 그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코피노스)였고, 이방인 지역에서 행하신 칠병이어 사건은 떡이 더 많았음에도 남은 것이 일곱 광주리(스퓌리스)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광주리가 바구니보다 더 큰 것일까?

필자는 어릴 적부터 이렇게 거두어 들인 열두 바구니 떡의 용도가 너무나 궁금하였다. 왜 예수님은 사람들이 먹기에 알맞도록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고 열두 바구니나 남도록 하셨을까? 그리고 남은 떡은 어떻게 처분하신 것일까? 성경 어디에도 그것을 팔았다든지, 제자들이 나누어 먹었다든지, 불우시설에 주었다든지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열두 개의 빈 바구니는 광야에서 어떻게 구한 것일까? 
사천 명을 먹이신 칠병이어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왜 하필 일곱 광주리일까? 남은 것을 어떻게 처분했을까?

바구니는 파피루스, 버들, 갈대, 대추야자 잎 등을 엮어 만든 둥근 그릇을 말한다. 버들로 만든 '살'에는 떡(창 40:16), 무교전병(출 29:3), 고기(삿 6:19 ) 등을 담았다. 이보다 큰 '두드'에는 무화과(렘 24:2)나 벽돌(시 81:7)을 담았으며, '실을 짜다'에서 유래된 단어 '테네'에는 하나님께 드릴 토지소산의 맏물(신 26:2)을 담았다.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테네를 말한다. 

신약에서는 '코피노스'와 '스퓌리스'가 나온다. '코피노스'는 버들로 엮은 손바구니로서 남은 떡 열두 바구니를 담을 때에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마 14:20, 마 16:9, 막 6:43, 막 8:19, 눅 9:17, 요 6:13). 이에 비해  씨를 뿌리다에서 유래된  '스퓌리스'는 일곱 광주리의 떡을 담을 때와(마 15:37, 마 16:10, 막 8:8, 막 8:20) 사울이 다메섹 성에서 탈출할 때 타고 내려 온 광주리로 나온다.
예수님도 바구니와 광주리를 정확하게 구분지어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코피노스)이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스퓌리스)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마 16:9~10)"

여기에서 우리는 '코피노스'가 유대인들이 정결 음식을 담는 도시락 바구니임을 알 수 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3일 길을 가려면 유대인들은 이런 구별된 정결 도시락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칠병이어 기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있었고 남은 떡은 일곱 '스퓌리스'였는데, 이 그릇은 이방인들이 정결 개념없이 아무 물건이나 담던 광주리였다.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먹기에 알맞도록 기적을 행하지 않고 음식이 남도록 하셨을까? 왜 남은 음식을 거두도록 하셨을까? 그리고 거두어 들인 떡은 어디에 사용되었을까?
아마도 열두 바구니는 유대인 바구니 주인들이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일곱 광주리는 이방인 광주리 주인들이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유대인 지역에서 남은 열두 바구니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숫자가 같다. 그리고 이방인 지역에서 남은 일곱 광주리는 가나안에 거주하던 일곱 이방 족속과 숫자가 같다. 헷족속, 기르가스족속, 아모리족속, 가나안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여부스족속이 그들이다.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귀신들린 딸의 어머니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 15: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제자들에게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마 10:5)"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점에서 열두 바구니가 선택받은 유대인들을 위해 남겨진 것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인 우리를 위해 일곱 광주리가 남겨졌다면 역설적으로 그것은 은혜이다. 
전 세계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속히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게 될 날이 기대된다.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 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