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아낙에서 본 이즈평야 다볼산 모레산 6월6일 (500).jpg      이스르엘 평야의 리크(500).jpg   
다아낙에서 본 이스르엘 평야 전경. 중앙 먼곳이 다볼산이다.           우기의 게데스 부근 키부츠 리크농장. 진흙을 짐작하게 해 준다.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 자료실 >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을 마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 가 하나님께 비를 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3년 6개월(약 5:17)이나 가물었던 땅에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왕상 18:45). 기적이었다.
문제는 기적 다음에 나타난 엘리야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해석이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드는 장면이 성경에 나오기 때문이다.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왕상 18:45~46)

- 왜 엘리야는 아합을 따라 나섰을까?
- 왜 엘리야는 마차 앞에서 이스르엘 입구까지 달려갔을까?
- 왜 아합은 엘리야를 마차에 태워주지 않았을까?
- 왜 우리는 엘리야가 사마리아로 마라톤 했다는 설교를 가끔 듣는가?

왜 엘리야는 아합을 따라 나섰을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자 지중해 쪽에서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었다. 이어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합 왕은 이 비를 맞으면서 (또는 이 비가 온 후에) 이스르엘을 향해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엘리야는 갑자기 마차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금방 마차를 앞질러 마차 앞에서 이스르엘 입구까지 달려 갔다.

이 내용에서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드는 부분이다. 많은 주석이나 자료들도 이 어색한 부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도 시원한 대답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다. 필자도 이 부분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가지고 현장을 조사하거나 연구를 해 왔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정답은 성경에 나와 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기 때문이다(왕상 18:46). 히브리어 직역 구약성경은 이 부분을 ‘여호와의 손이 엘리야에게 있어’로 번역하였다.

그러면, 왜 쓸모없어 보이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을까? 그 답은 다음에 나오는 내용들과 매우 관련이 깊을 것이다.
디셉 사람 엘리야는 성격이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사람이다. 그의 불같은 성격은 베드로와도 흡사하다. 엘리야의 고향은 디셉 즉 길르앗 산지인데, 이러한 배경은 그의 성격을 거칠게 만드는데 일조하였을 것이다. 혹자는 브엘세바 로뎀나무 아래서 그가 죽기를 구한 것에 대해 소심한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사실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죽여 달라고 기도한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엘리야의 단순 과격한 성격은 지금 막 비를 맞으면서 황급히 떠난 아합 왕을 보고만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두 차례에 걸쳐 간절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극도의 피곤을 느꼈을 테지만 왕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뒤따라 나선 것이다. 한 때 자기를 죽이려 했던 원수이지만, 그래도 그는 일국의 왕이 아닌가. 지금 그 왕이 자기 아지트 격인 갈멜산에 왔다가 비를 만나 낭패를 당하고 있는데 어찌 그 과격한 성격에 앉아 쉴 수 있었겠는가.
엘리야의 아합 왕에 대한 적대감 없는 마음은 성경의 앞 부분에도 나와 있다. 손 만한 구름이 일어났을 때에도 엘리야는 사환을 시켜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라는 전갈을 하였던 것이다.

왜 엘리야는 마차 앞에서 이스르엘 입구까지 달려갔을까?
그러면, 엘리야는 왜 아합(마차) 앞에서 달려 갔을까? 이 부분이 사실은 궁금증의 핵심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선 필자의 경험을 먼저 이야기 하려고 한다.
필자는 이스라엘에 사는 3년 반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성지로 나가 사진을 찍거나 거리를 재는 등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우기에 갈멜산과 이스르엘 중간 지점에 있는 게데스 성읍 유적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스르엘 들판 가장자리에 있는 아주 작은 성읍이라 찾는 것이 힘 들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자동차가 진흙에 빠져 더 큰 애를 먹었다. 그날에는 비가 오지도 않았고, 농로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아도 차가 빠져 고생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바퀴와 신발에는 진흙이 한 짐이나 들어붙었고, 한 번 붙은 진흙은 떨어질 줄 몰랐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진격하다가 동장군과 진흙장군 때문에 패배하였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으나 바르샤바에서 모스크바로 열차를 타고 가면서 진흙장군의 힘을 본 적이 있다. 이스르엘 평원도 그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돌이 귀한 데다 흙은 차지고, 군데군데 자연 호수와 늪이 있는 저지대인 것이다.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땅이라도 이스르엘 평야의 흙은 매우 부드러우므로 금새 진흙으로 변해 버리는 그런 땅인 것이다.

이스르엘 평야의 차진 흙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중요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바락과 야빈 왕을 대리하여 싸운 드보라와 시스라의 전투이다. 이 전투는 다볼산과 다아낙 사이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장소는 정확하게 갈멜산에서 이스르엘로 가는 아합왕의 귀가 길과 열 십자로 교차되는 곳이다. 이 전투에서 드보라는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은 큰 비를 내려(삿 5:4, 5:21)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진멸하셨다(삿 4:16). 야빈 왕의 철 병거 구백 대(삿 4:13)를 진흙에 빠뜨리자 총지휘자 시스라는 오도가도 못하고 결국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하게 되었다(삿 4:15). 성경에는 칼날로 혼란에 빠뜨렸다고 나오지만, 시스라가 마차를 타고 도망가지 못한 이유는 바로 진흙 때문이었다.

그러면 이스르엘 평야의 진흙과 엘리야의 마라톤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 답은 엘리야가 아합의 마차가 잘 달릴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렸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만 달렸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길 안내자의 모습이다.
아합이 엘리야를 왕궁으로 데려가 젖은 옷을 갈아입히고 잔치를 배설했다는 이야기나, 길 안내 임무를 마친 엘리야가 쓸쓸히 갈멜산으로 걸어 왔다는 대목이 나오지 않아 그 후의 사건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갈멜산에서 이스르엘로 오가는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엘리야이다. 갈멜산은 엘리야의 은신처였고, 그는 그곳에서 이스르엘 뿐만 아니라 수넴, 오브라(아풀라), 요단계곡으로 나가는 길을 다닌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아합왕도 사마리아보다 지대가 낮아 기후가 온화한 이스르엘에 겨울 궁전을 두기는 했지만, 땅이 진 날에 마차로 갈멜산 나들이를 할 일은 없었을 것이므로 엘리야의 길 안내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왜 아합은 엘리야를 마차에 태워주지 않았을까?
아합 왕이 엘리야를 마차에 태워 주지 않은 데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우선 외형적으로 엘리야는 마찻길을 안내해야 했다. 물론 마차에 함께 타고 길을 안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면 마차 바퀴는 진흙 속으로 더욱 깊게 박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필자는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우선 아합 왕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마차에 태우는 것을 꺼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이 왕후 이세벨에게 알려지면 바알의 성실한 추종자인 그녀가 화를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엘리야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바알신을 섬기는 아합의 마차에 굳이 오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가끔 엘리야가 마라톤을 했다는 설교를 듣는가?
아합 왕은 갈멜산에서 겨울 궁전이 있는 이스르엘로 돌아 갔다. 갈멜산 정상에서 이스르엘까지의 직선 거리는 26km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사마리아까지 (또는 이스르엘까지) 40km를 달려 갔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때로는 엘리야가 마라톤의 시조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이러한 오해는 아합 왕의 궁전이 사마리아에 있는 것만 알고, 이스르엘 평야에 있는 겨울 궁전을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스르엘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 중에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왕상 21장)도 있으므로 아합이 이스르엘에 수시로 내려와 일정 기간씩 거주하였던 것은 확실하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종종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이외의 지역에 별궁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헤롯의 마사다 겨울 궁전은 예루살렘과 대조적인 기온 때문에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참고로 갈멜산은 해발 530m이며, 갈멜산에서 사마리아 즉 오늘날의 Sebastya까지는 43.5km이다. 그리고 마라톤 코스는 정확하게 42.195km이다.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기독교 자료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