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렘은 코란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 핵심 구절인 수라 4:11의 해석에는 여러 논란들이 있지만, 부인들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남편은 이방 저방을 골고루 옮겨 다니면서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나도 여기 저기 네 군데의 집이 있어서 골고루 옮겨 다니면서 잠을 자야 하는 입장에 있다. 모슬렘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이름으로 등록된 집도 하나 없는 주제인데, 잘 집은 네 군데나 있으니 행복한 남자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잠을 많이 자는 집은 울산에 있는 관사이다. KOTRA 울산무역관 관장으로 파견되어 보통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이곳에서 잠을 잔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밤 12시가 되도록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편안한 보금자리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결정적 단점은 홀아비 냄새가 난다는 데에 있다.

그 다음으로 잠을 많이 자는 곳은 경북 청도에 있다. 고령의 아버지와 함께 지내기 위해 보통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 곳에서 잠을 잔다. 부모님이 나를 업어 키우시던 고향집이니 그 편안함이란 말할 수 없다. 아무리 깜깜한 밤일지라도, 그곳에는 마당에서 나를 만나주는 별들이 있어서 더욱 좋다. 그리고 주일마다 고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큰 감사거리이다.

서울 집에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내가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주고 받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비록 방바닥에 메트리스 한 장 깔고 자는 침대이지만, 발치 위에 빽빽하게 걸린 가족들의 옷 냄새가 나를 포근하게 잠들게 하는 집이다. 아침 6시 45분이면 어김없이 가정예배를 드리는 복된 가정이다.

그 외에도 내가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충북 제천에 있는 어느 골짜기이다. 그곳에는 아직 싸늘한 컨테이너 하나가 있을 뿐이지만, 아무 때나 가서 잠잘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고상한 표현이고, 그곳에 가면 토요일 새벽부터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면사무소로부터 땅 주인이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므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제천 골짜기는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다. 대낮에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린다. 세상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조금만 귀 기울이면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 그곳에 속히 기독교박물관이 세워지도록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이렇게 네 군데를 돌아 다니다 보면, 즐거움 보다 피곤을 느끼는 때가 더 많다. 어느 한 곳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나의 집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이 언제까지나 나를 무료로 잠재워 줄 집들이 아님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하나씩 떨어져 나갈 육신의 집인 것이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