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3일자 국민일보 10면에 두 명의 힐러리 사진이 게재되었다. 한 명은 힐러리 클린턴이고, 다른 한 명은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뉴질랜드의 에드몬드 힐러리 경이다. 하나는 미국의 대선 주자로 실렸고, 다른 하나는 88세에 죽은 그의 장례 행렬이 실렸다.

에드몬드 힐러리가 해발 8848미터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자, 힐러리 여사의 어머니는 에드몬드 힐러리의 이름을 따라 딸에게도 힐러리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힐러리 여사의 홈페이지에 가 보니 그는 1947년 10월 26일생이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 힐러리 경에 대해 찾아 보니 그는 1953년 5월 29일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니까 힐러리 여사가 6살때 힐러리 경이 정상에 오른 셈이다.

뭔가 이상하여 좀 더 조사해 보았더니, 힐러리 여사의 이름 이야기는 1990년대에 그의 자서전을 대필하던 작가가 임의로 써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명의 힐러리와 각각 조그마한 인연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실망스런 순간이었으나, 이미 두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터였다.

힐러리 여사에게 반하게 된 것은 그의 친필 서명을 보면서부터이다. 2003년, 이스라엘 케파르 사바 시청 방명록에 써 둔 'Hillary'라는 큼지막한 글씨는 정말 당당했고,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힐러리 클린턴'도 아니고, 그냥 '힐러리'였다.

힐러리 여사의 홈페이지에 가 보니, 아버지 휴 로담은 커텐 판매업을 했지만 너무 가난하여 난로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침에는 자녀들이 일어날 시간에 맞추어 항상 불을 지펴 놓았다고 한다.
어머니 도로티는 소방관의 딸로 태어나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딸 힐러리도 학생시절에 주일학교에 잘 다녔고, 14세때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강연회에도 참석하곤 했다고 한다.

힐러리 여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르윈스키 스캔들 때문이다. 1998년 남편 빌 클린턴의 죄상을 적은 영문 고발장과 르윈스키가 직접 쓴 '모니카의 진실'이라는 책을 보면 클린턴의 일거수 일투족이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힐러리 여사는 그러한 남편을 덤덤하게 수용해 주었다.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라는 책에서도 그의 당당함과 야망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

힐러리 경을 만난 것은 1995년부터 뉴질랜드에서 무역관장으로 일하던 시기이다. 그는 레뮤에라에 살았고 나는 레뮤에라 로타리클럽에 출석하였다. 그리고 레뮤에라 골프 클럽 회원이기도 했다.

힐러리 경은 키와 몸집이 크고 손발도 큼직하였지만, 겸손한 사람이었다. 자기를 도우면서 함께 정상에 오른 네팔인 텐징을 존경하였고, 죽는 날까지 네팔에 많은 학교와 병원, 다리를 건설해 주었다.
이 위대한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그는 자기 얼굴이 새겨진 뉴질랜드의 5달러짜리 지폐에 손수 싸인을 한 후, 그것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제 하나의 힐러리는 가고, 다른 힐러리가 다가 오고 있다.  
< 출처 : 세계기독교박물관 www.segibak.or.kr 김종식 장로 칼럼>